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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im Mar 13. 2024

마음이 놓인 자리

갑자기 드라마를 보다 아팟던 나의기억이 떠올랏다.기억하고 있지만. 말하기에는 아픈  ….


부모님들은 맞벌이를 하셨었고 그럼에도 우리 집의 가난은  나아지지 않았고. 매일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어린 동생 둘과  난 엄마가 돌아오기를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에서 기다리곤 했다. 지금처럼 가스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석유곤로에 불을 켜 밥을 하는 시절   나무장작을 해서 불을 때는 집도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감히 밥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없었었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불리지만 그 시절에는 국민학교였고 엄마가 집에 하루라도 있는 날이면 , 하굣길 내 발걸음은  집을 향해

날아가듯 달렸다. 4학년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엄마가 직장에 안 가고 집에 있다고 했었기에  오로지 엄마가 기다린다는 이유하나만으로 학교에서 받은  삼각우유를 가지고

아직 다섯 살짜리 동생에게  챙겨주기 위해  고사리손에 꼭 주고 집으로 달려갔다. 따스한 가을하늘에 햇살무지개, 익어가는 벼들,

바람에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나뭇가지, 여름이면 아카시아향기가 가득했던  학교길. 내 기억 속 그 길. 지금버스두세정거장은

되었을  길을. 냅다 내달려 부지런히 도 엄마가 기다리던 집을 향해 달렸다.

우리는  셋방을. 살고 있었다. 5 식구 나와 동생 둘 , 엄마, 아빠 그러나 아빠는 맨날 일하느라 집에 잘 오시지 않았고. 엄마하고 우리셋 이만

있는 시간이 많았었다. 엄마가 만들어줄  호떡 생각과 , 우유를 보고 기뻐할 동생 얼굴을 상상하며  집방문!! 여는 순간 방안은 텅 비어있었고

어린 동생은. 엄마 없이  바구니하나를 들고 개울에서  놀고 있었다. 요사이법. 같으면  아동 방조 뭐 이런 죄로 부모에게 벌이가 해졌겠지만

먹고살기 힘들었던 1970년대 많은 부모들은 그렇게 밭으로 공장으로. 아이들을. 놓고 일을 해야 했다

엄마가 기다릴 거란 부푼 마음은. 엄마가 없다는 서운함으로 바뀌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었고, 동생은 “빨리 우유 줘”손을 내밀고, 내 옷을 흔들고

있었다. 눈물을 닦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엄마의 야속함. 서운 함을 뒤로하고 가방에서 동생에게 우유를 꺼내주었었다.

다섯 살 밖에 되지 않는 어린 동생 아침밥 먹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동생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었다

오랜 전 기억임에도 아직도 이렇게 생생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내게는 아프고 , 반복되었던 일상이었기에 생생한 거다

늦게 가로등도 없는 길을 걸어올 엄마를 생각하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엄마가 걸어올 그 길을 동생들과 마중 나섰다

까만 비닐봉지의 부스럭거림이. 들리고. 어깨에 가방을 멘 사람이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모습!! 엄마 같아서 달려갔고, 역시 엄마였다

“엄마”하고 부르며 우리 딸 셋은  달려갔다 이산가족상봉도 그렇게  절절하지 않았을 거다. 난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 왜 집에 있는다고 그래놓고, 나갔어!!! 어디 갔다 이제와 배고파  죽겠는데 “

투정과 엄마가 거짓말한 것 같은 야속함에 엄마를 행해 아우성을 치던 나

“엄마가 갑자기 일이 생겼었어.. 가자 배고프지..!!

저녁 9시가 훌쩍 넘은 시간 엄마는 늦은 저녁을 시작했고. 석유곤로에 불을 댕기고. 분주하게

늦은 자식들의 저녁을 하는 엄마의 뒷모습에 난 물었다

“엄마!!! 내일도 나가???

내 물음에 엄마는 “나가야지 ~~~~ 나가야 돈벌지”라며 눈을  흘겼다.

뻔한 대답을. 알면서  , 아니 엄마가 나가야 돈을 벌어온다는 걸 알았으면서 나는

 엄마가 집에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가끔 티브이를 보면 나오는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들이 나오는 장면은. 누구나에게나  가지고 있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작지만 간절한 로망이어서  일거다. 사랑받고 있다는 부모에 대한 확인이며 , 우리 부모님은

나를 이렇게 생각해 준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기에 우리가 보는  가정

드라마들에 상징적으로  나오는 장면이겠지.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엄마가 학교에 우산을 가져다

준 일이 없다. 비를 맞으며 가방을 머리에 들쳐서 우산 삼아 뛰었고, 친구들과 그냥 비를 맞으며

밭에 있는 오이나 토마토를  툭!!! 따서 먹으며  비를 맞고 돌아왔던 기억뿐..

나의 부모님은 비가 오는 하굣길에 아이를 걱정할 만큼의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먹고사는 일에. 바쁘셨으니까.. 엄마가 버스를 타고 나가던 날

일하러 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다른 엄마들은 다 집에 있는데, 엄마는 왜 맨날 나가”

소리를 지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 집으로 가는 척을 하다   출발한 버스를. 쫓아갔던 나!!

그런 철없는 나의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며 내 마음에 맺혀있었다

그때 왜 그랬을까!!!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의 품이 그리웠다고 말이라도 해줄걸 … 엄마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한다고 말이라도 해줄걸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내 마음을  말해줄 시간도 없이 내가 크자마자

아주 먼. 길을 떠나 버렸다. 엄마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던 시기 엄마는 암선고를 받았고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가버렸다. 엄마를  덧  없이  보내야 했던  준비되지 않았던  이별  평생  우리  곁에  있어줄 거 같았지만   엄마는

그렇게  가고  전하지  못한  엄마를  많이  사랑한  내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 죽음 앞에 그냥  놓였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그때가 돼서야

깨닫는 인간의 얄팍한 심성 그때의 일을 기억하며. 난 내 자식에게 아쉬운 부모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다. 내가 너희를 많이 사랑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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