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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생끝에골병난다 Jul 09. 2023

파리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이유

10월의 파리 #2 (퐁피두. 센 강. 고양이. 노키즈존)

10월의 파리. 당신도 한 번은 파리에 가야할 이유.
-퐁피두. 센 강. 고양이. 노키즈존?



파리 여행기를 이어서 쓴다는 게 좀 늦어졌다. 원래 지난 주말에 썼어야 하는데 계획대로 될 리가 없다. 살다보면 늘 이런저런 일이 있다. 계획 다 지키면서 살면 성격만 이상해질 것이다.



파리 여행 첫 날에 대해 써보려 한다. 유럽에 도착하면 나처럼 게으른 사람도 미라클 모닝이 된다. 새벽에 눈이 떠지면 강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방에 있어봐야 할 일도 없었고, 바깥은 파리였다.

숙소는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에 있었다. 호텔스컴바인에 달린 영어 리뷰를 번역해보니, 매우 의심스러운 동네. 더럽고 위험한 숙소. 이런 악평 일색의 숙소였다. 몹시 시끄러움. 혼자 온 여행객에게 권하지 않음.  숙소에 묵기로 했다. 대학생 여행객에게는 기차역 근처의 값싼 숙소만큼 매력적인 게 없다. 파리는 어차피 모든 집이 낡아있다. 그래서 파리 시민들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공원에서 오후를 보낸다. 타인과의 교류를 끊고 열심히 살아간 끝에 베타적인 '게이티드(gated)' 아파트에 갇힌 우리와 달리, 도시 전체가 파리 시민들의 정원 같았다.


호텔을 나서 남쪽으로 쭉 걷기 시작했다. 파리에서는 길을 잃을 확률이 적다. 계획적으로 구획된 도시라서 모든 길이 센 강으로, 에펠탑으로, 개선문으로 이어진다. 걷다보면 다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이다. <비포선셋>에서 연인이 재회한 서점, <미드나잇인파리>에서 주인공이 거닐던 골목.




하늘이 밝아질 때쯤 퐁피두 센터가 나왔다. 파리의 현대 미술품들을 전시해둔 건물인데, 기둥과 구조물을 모두 밖으로 빼둔 디자인이 혁신적이다. 건물에서 기능 없는 요소는 모두 제거한, 지극히 현대적인 건물이다.


퐁피두는 르 코르뷔지에라는 전설적인 현대 건축가의 작품이다. 사진에 보이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X자' 지지대는 철근 건축의 구조적 혁신을 상징한다. 벽돌을 쌓아올려 하중을 견디는 건축에서, 철의 당기는 힘을 이용한 건축으로의 전환을 관찰할 수 있다. 덕분에 훨씬 넓은 창을 내는 것이 가능해졌고, 적은 자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앞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오믈렛과 커피로 구성된 간단한 아침이었다. 기억에 남는 건 고양이다. 이름이 뭐랬더라? 까먹었다. 아무튼 뚱뚱한 고양이 한 마리가 주문을 마친 내 품에 냅다 뛰어 들었다. 식당에서 소란스러운 어린이도 못 참는 한국인들은 까무러칠 상황이지만, 어린이와 고양이가 당연하게 존재하는 식당에서 내 존재도 더 당연하게 보이지 않을까? 나도 여기선 낯설고 규범에 무지한 이방인이다. 살다보면 또 언제든 이방인이 될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가던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으리으리한 건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제일 화려한 건물이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파리 시청이란다. 아까 본 퐁피두 센터와는 대조적이다.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고딕형 건물이다. 사실 쓸모없는 것들이 아름답기는 하다. 쓸모가 있다면 상품이고, 쓸모가 없어야 예술이다. 공작새의 깃털은 무용한 수준을 넘어 생존을 방해한다. 오페라 하우스도, 에펠팁도, 딱히 유용한 건물은 아니다. 무용한 것은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그래서 '쓸모'를 강조하는 현대 건축은 그다지 감동적이않고, 현대의 도시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말 그래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센 강이 시작된다. 이런 것이 파리의 매력이다. 빌딩 몇 채 덩그러니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건축과 공원과 강이 하나의 시퀀스로 연결된다. 덕분에 온 도시가 테마파크 같다. 비슷한 듯 하지만 모두 다른 건물과 다리가 센강을 따라 펼쳐졌다.


센강에서 바라본 파리의 엽서 같은 풍경은 프랑스 여행의 하이라이트 아닐까. 좁은 강에 여객선이 떠있고, 강가에 앉아 쉬는 사람들은 풍경의 일부로 사라진다. 화려한 건물들 너머로 에펠탑이 보인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흘깃 보고,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있고, 신문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크레페를 파는 가게 앞에 들뜬 표정의 여행객이 앉아있었. 오래된 거리에서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시원한 바람이 지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가방에 바게트를 넣고, 카페에 앉아 곰방대를 문 채 신문을 읽는다. 파리 사람들은 진짜 그러고 다닌다.



어디로 발길을 옮겨도 조금씩 다르고 매력적인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특징이 파리의 강점이다. 권력과 상업의 중심인 개선문과 상젤리제 거리. 관광 명소인 루브르 박물관과 에팔탑. 경제의 첨단인 라 데팡스, 젊고 혁신적인 '힙스터' 문화의 중심 생마르탱 운하, 자연의 산뜻함이 아름다운 뤽상부르 정원과 베르사유 정원, 자유와 예술의 성지 몽마르트르 언덕까지. 건축가 민선주는 도시의 발전을 삶은 달걀, 계란 프라이, 스크램블 에그(scrambled egg) 3단계로 정의했다. '삶은 달걀' 단계의 도시는 중심부인 노른자 하나와 나머지 변두리로 구성된다. 중심부와 하얀 외곽은 뚜렷하게 분리된다. 다음 단계에서 도시는 계란 프라이처럼 넓어지지만 노란 중심부와 하얀 변두리의 구분은 여전하다.


선진적인 도시는 노른자와 흰자가 골고류 섞여 도시 전체에 다양한 중심들이 분포하는 스크램블 에그 형이다. 이 정의에 의하면 서울은 여전히 계란 프라이 형 도시에 해당한다. 어디로 향해도 고유한 매력을 품은 파리처럼, 서울도 스크램블 에그처럼 다양한 매력이 서로 뒤섞여 울퉁불퉁한 다핵의 도시로 발전한다면 좋겠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너도나도 '강남 스타일'을 찬미하던 시절을 지나, 성동과 마포, 종로의 독특한 명소가 발굴되는 지금이다. 모든 국민이 강남을 향해 달리는 도시가 아니라, 고유한 장소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는 서울이 되어가고 있다. 전환은 이제 시작이다.



센 강 남쪽으로 넘어가 판테온을 잠시 구경하고, 뤽상부르 정원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종업원은 동양인인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왔다. 그녀는 몽골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한국인인 걸 바로 맞추기도 했다. 사실 동양인에게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분간하는 능력 같은 게 있다.

메뉴 추천을 부탁하자 하이 텐션이던 직원이 뭐라뭐라 설명을 해줬지만 사실 잘 못 알아들었다. 아마 달팽이로 추정되는 무언가와 함께 샴페인을 마셨다. 시간이 이른 탓인지 식당에는 사람이 드물었고,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로나 들었던 카를라 브루니의 샹송이 들렸다.

오후에는 뤽상부르 정원부터 루브르, 에투알 개선문 같은 굵직한 것들을 보러 다녔지만, 인스타에는 사진을 10개만 실을 수 있는 관계로 글을 마치려 한다. 여행에 가산을 탕진하는 집안에서 자라 여행을 좋아한다. 오래전 여행 사진을 보면 무의미로 인한 사망을 늦출 수 있다.


파리에서 보낸 작년 10월. 그 가을의 사진을 돌아보면서, 낯선 거리가 풍기는 온화한 설렘의 기운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행지의 생경한 풍경이 가족과 함께한 유년기의 무의식을 불러내는 것 같다. 다리 아프다고 투정이나 부리는 나에게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주려고 주말마다 캠핑을 가고, 산에 올랐던 부모님을 떠올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온몸이 아픈 주말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전역하는대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고 싶다. 먼 해외가 아니여도 좋다. 기차를 타고 낙엽이 예쁘게 물든 산골 마을로 가서 그 지역의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 강물 따라서 막 걸어다니다가 동네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싶다. 우연히 닿은 찻집은 경치가 좋아서 한참 책을 읽고 싶다. 먼 도시의 공기가 사람을 얼마나 산뜻하게 해주는지, 낯선 가게에서 편안하게 노래를 듣다가 문득 그대로 길을 나설 수 있는 하루가,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었는지 기억해내고 싶다. 시간이 흘러 기억의 용량이 줄어들어도, 그 가을 풍경은 마지막까지 꺼내볼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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