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 1
내 인생의 첫 번째 기억은 할머니 앞에 뛰어들었던 날이다. 집에서 10분 거리의 큰 집에 살고 있던 할머니는 잠잠할만하면 찾아와서 엄마와 큰 싸움을 벌이곤 했다. 엄마와 할머니가 싸웠던 이유는 하나였다.
아빠.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시장에서 작은 젓갈 가게를 운영했다. 나의 아빠는 새벽 5시면 일어나 시장에 나가 가게를 여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동시에 한창 가게를 열고 있어야 할 오후 시간에 술을 마시고 가게를 내팽개치고 집에 돌아오는 무책임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빠의 이런 무책임함이 싸움의 원인이었다. 아빠가 이렇게 가게를 비우면 할머니나 엄마가 가게를 지켰고 갈등으로 이어졌다. 할머니는 아빠가 무책임한 탓을 엄마에게 돌렸다. 할머니가 한참을 쏘아붙이고, 묵묵하게 듣고 있던 엄마가 끝내 한 두 마디 반박을 하면 싸움이 시작됐다.
우리 집은 10평도 되지 않는 작은 집이었다. 네 가족이 함께 자는 큰 방과 공부방 겸 창고처럼 쓰는 작은 방이 집의 전부였다. 거실도 없는 집의 부엌에서 싸우는 소리는 집 어디에 있어도 명확하게 귀에 꽂혔다.
어린 나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엄마는 아빠와 10년도 살지 않았다. 할머니와 아빠는 30년이 넘게 살았으면서! 게다가 아빠는 멀쩡히 큰 방에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아빠 때문이라면서 당사자도 아닌 둘이 왜 이렇게 며칠 걸러 싸움인지.
몇 년이고 이런 상황을 목도하던 끝에 그날은 참치 못하고 그 싸움에 뛰어들었다. “우리 엄마한테 소리 지르지 마세요!” 그날 두 사람의 표정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어른들 말하는데 끼어들지 말라던 할머니의 말은 제법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빠 문제를 넘어 어른 문제에 끼어드는 딸을 둔 죄까지 추궁당하는 엄마를 보며 일종의 비참함을 느꼈다.
우리 집이 항상 불행하진 않았다. 초등학교 이전까지는 가끔이지만 주말에 외식을 하기도 했고 이모네와 함께 바다며 콘도며 놀러가기도 했다. 보통 유아기의 좋은 기억이 자아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좋은 추억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화목했던 기억이 나의 자아에 영향을 미쳤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주말 이틀 화목하고 행복했다고 나머지 5일의 불행을 참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아빠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할머니가 너를 정말 사랑하셨노라고. 할머니는 내가 3살까지 같이 살면서 나를 키웠다. 매일 나를 업고 시장에 나가 손녀를 자랑했고, 유아차에 태워 산책을 다녀가며 손녀를 사랑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음에도 나는 끝내 할머니를 사랑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아빠가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잡아주라고 했지만, 손을 잡은 후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벅벅 씻었다.
할머니는 내게 첫 번째 트라우마였다. 부당함을, 분노를, 무력감을 가르쳤다.
내 인생의 첫 기억은 그대로 남아 나의 인생에 작용했다. 아빠는 변하지 않았고, 엄마는 점점 신경질적이 되어갔고, 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엄마를 괴롭혔으며, 나는 변하지 않는 현실을 겪으며 점점 우울에 빠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