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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상실 Feb 03. 2024

누구를 위한 설 용돈인가

돈이라는 복잡미묘한 세계

2024년 2월 2일


지출내역

1.  둘째 차 닦기 용돈 1,000원

2. 양가 부모님 용돈 500,000원*2=1,000,000원



투자내역

0원

*간밤에 미국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예상치보다 많이 나와서 채권과 주식시장은 랠리 중, 평가손실이 드디어 경차값으로 줄어들었다. 행복하다!


 



이번 설 용돈은 내 월급으로 드릴게.



명절 상여금이 나오는 날 아침.

이체한 내역을 남편에게 보내주니 눈이 똥그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남편 월급으로만 설과 추석에 양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었다. 역할 분담이 되어있었던 것이 아니라 난 용돈 드리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넘게 지옥철을 타고 출근하면서도 힘들지도 않은 건가? 언넝언넝 돈 모아서 출퇴근 시간 줄일 생각은 안 하고 그저 물러터진 남편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게다가 시댁에서 육아도움이나 금전도움도 없었으니 내 기준으로는 합리적이지 않은 지출이었다. 굳이 왜??? 용돈을 드려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챙기고 싶어 하기에 시댁은 남편이 알아서 이체하고, 친정은 남편이 나에게 이체해 준 돈을 친정 부모님께 그대로 전달했었다. 친정에서는 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며 매번 다시 돌려주었으니 용돈깡을 한 셈이 되었다. 돌고 돌아 나한테 왔으니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문제가 터졌다.



터울이 적게 둘째까지 낳으니 육아휴직 기간이 길어졌다. 게다가 남편은 판교 밑으로는 일자리를 옮길 수 없다고 못 박았기 때문에 같이 살려면 육아휴직 동안 내가 재임용 시험을 봐서 지역을 옮겨야 했다. 거의 할 수 있는 휴직은 다 끌어썼었다. 휴직 동안 소득이 반토막이 나서 점점 형편이 빠듯해졌을 때는 한 푼이 아쉬웠다.


돈이 참 많아서 드려도 드려도 곳간이 줄지 않으면 뭐가 문제일까? 2년에 오천씩 전세금을 올려주기에도 빠듯한데 드려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 형편에는 무리다!라고 했지만 미동도 없었다. 해서 차라리 드릴 거면 시댁에만 드리라고 했다. 친정부모님은 우리보다 소득도 자산도 많다고...


남편의 대답은 "이 정도는 드릴 수 있어"였다.



'하아.... 천기저귀 쓰면서 아끼면 뭐 하나, 모래알 흩어지듯 다 흘러내리는데'라는 생각이 거의 강박처럼 따라다녔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시댁에 미운 감정이 쌓여갔다. 그 분노와 화가 내 몸을 망가뜨리는 줄도 모른 채...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허세 없는 마음들이 참 좋았다. 차가 없대도 내 차로 데이트를 하면 됐고, 5년 정도는 돈 모아서 결혼하고 싶다고 할 때도 내가 단칸방 월세부터 시작해도 된다고 했었다. 원룸은 고생해서 안된다고 하면 전혀 고생이 아니라고 맞받아쳤다. 그때는 그런 조건들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돈이 많지 않다아!'를 애둘러 얘기해줬음에도 난 개의치 않아 했고, 못 알아 처먹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세상물정을 너무 몰라서 그랬겠거니 싶다. 상대가 나를 속인것도 아니었는데 다른사람과 비교하며 없는 부분을 자꾸 채근했던것 같다. 그거 다 욕심이라는 것을 이제서는 알겠다.



암튼, 내가 좋아하고 상대도 나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만날 때마다 설득에 설득을 거쳐 결혼 승낙을 받아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 마음만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을 뿐.






그즈음 나와 비슷하게 결혼을 하게 된 직장동료가 있었다. 나이도 같아서 거의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했다. 비슷한 환경에 노는 물도 생각하는 것도 게다가 일터까지 같으니 서로의 사정을 훤히 알게 되었다. 그 친구의 남자 쪽에서는 살 집도 마련해 준다고 하고(자세히 보니 집을 사준다는 건 아니었고, 집 담보를 일으키면 그 이자를 지원해 준다는 거였다. 그래도...), 뭔 보석 세트도 받았다고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하니 남자친구가 다른 세트를 다시 사주었다고 하는 둥 점점 나와는 다른 길을 걷는 것이 보였다. 어느 날은 예비 시어머니께 선물을 받았다며 무심한 척 책상에 새 백을 내려놓았다. 백화점에서 그분이 이런 얘기도 했다고 했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샤넬을 좋아하던데,
 난 에르메스가 제일 이더라


하아...... 에르메스 첨 들어봤다 친구야... 백은커녕 지금 둘이 모은 1억으로 전셋집도 못 구하고 있는 판인데... 나는 모지리인가?라는 생각이 휘몰아쳤다. 가진 돈에 맞게 시작하자고 했으나 마음속으로는 헐값에 처분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혼은 인생 최대의 비즈니스라는데 나는 뭘 얻는 건가?라는 생각에 남편이 좋으면서도 싫어졌다. 상대의 덕을 보려는 마음은 내 몸이 좀먹을 때까지 이어졌다.





암은 곧 화병이라는 말이 있다. 나한텐 딱 그러했다. 몸에서는 이런 경고를 했다.


너 이렇게 살다 간 죽어!



육아휴직을 했을 때는 아이를 키운다는 정당성이라도 있었지... 질병휴직 때는 아이들도 많이 컸으니 그냥 잉여인간이 된 것 같았다. 게다가 병으로 금도 갔으니 더더욱... 결혼생활에서 늘 내가 손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지금은 남편이 손해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온전히 한 사람을 부양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성년도 아닌 성인을...



내가 먹는 과일, 고기, 온수, 옷값 등 어느 하나 남편이 벌어오지 않은 돈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생채기내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병으로 금 간 마음은 스스로를 쪼그라 들게했다. 나라면 부모님 명절 용돈부터 잘랐을 테고, 돈 아껴 쓰라고 닦달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남편이 나를 보는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잊었었네, 내가 반했던 이유.



신세지고 있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커질 무렵,

어느 날 저녁에 된장찌개에 들어있는 두부를 먹으며 남편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두부를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니...감동...그 자체! 곳간에 인심나고 두부에 꺼질락말락한 사랑이 켜졌다.



두부사건 이후 난 나만의 잘난 척 세계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완벽주의로 숨 막혔을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 내가 다 맞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처음엔 내가 좋아한다고 결혼하자고 했다가 살다 보니 생각했던 거랑 다르다고 그렇게 미워했으니 황당할 법도 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오셔서 육아도움과 냉장고를 가득 채워주시는 처가댁에 명절 때라도 돈을 드리는 싶은 남편 마음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일하시느라 시간을 내어 주시지는 못했지만 시댁에 갈 때마다 맛난 음식으로 환대를 해주시고 늘 응원해 주시니 그 마저도 남편 입장에서는 고마웠을 테고 말이다. 어찌 보면 난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닌 온리 테이크만 했을 뿐이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더는 미워하는 마음이 자리잡을 수 없도록 내려놓고 있다. 내 갈길에 그리 비중이 없는 일이라면 다 노상관하고 있다. 단체 카톡방에 몰래 나오기 같은 기능처럼! 스리슬쩍 빠지기! 굳이 다 내가 바꾸려하고, 관심 갖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그동안은 왜 그리 절절맸는지. 아마 내 몸의 맷집을 과대평가해서 그랬을 테지...



직장 상사든, 반에 손 많이 가는 금쪽이든, 비교질 하는 친구든 미워하며 나를 갉아먹는 일은 이제 끝이다. 병이 아니었다면 처음처럼 빛나고 있던 가장 가까운 보석을 몰라볼 뻔하였다. 나 멕여살리느라 애썼어. 고마움에는 돈이 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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