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E

커리어 전환기 온전히 마주하기

by 오디세이

Out of the blue: 뜻밖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시작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 그게 딱 내 상황이었다. 주변에서 하나둘씩 퇴사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설마 나까지야’ 싶어 애써 외면해 왔지만 결국 그날은 내게도 왔다. 몇 번의 합병, 팬데믹, 끝없이 밀려드는 위기 속에서도 핵심 사업을 지켰고, 신제품도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하지만 아시아 본부 차원의 구조조정은 매몰차고 빨랐다. 회사 측은 희망퇴직 협상을 서두르며 ‘결단’을 재촉했다.


물론 법적으로 강요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국 리더십 팀의 일원이자 상위 관리자라는 위치에서, 이 문제를 오래 붙잡고 있는 건 현실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 조건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이야기를 가족에게, 특히 아내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막상 말을 꺼내자, 아내는 뜻밖에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아니, 어쩌면 그 담담함은 나를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이전에 계획되어 있던 가족 여행은, 결과적으로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걸까’로 시작된 질문은 여행이 끝날 무렵엔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나는 사직서에 서명했다. 공을 남기지 않기 위해 고객, 파트너, 동료들에게 차분히 인수인계를 마쳤고 몇 번의 공식과 비공식 송별회를 지나, 나는 조용히 회사를 떠났다. 그 순간 문득, 오래전 같은 이유로 회사를 떠났던 동료에게 내가 건넸던 한마디가 떠올랐다.


“Bless in disguise (꼭 전화위복이 될 거야).”


이제 그 말은,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다짐이 되어 있었다.






Awareness: 알아차리기


예기치 않은 구조조정 이후, 나는 한동안 혼란 속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제는 내 상황을 직시하고, 이 시간을 어떻게 넘어설지를 가늠해야 할 때였다. 문제의 본질은 외부에 있지 않았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반응할 것인가—방향을 바꾸는 열쇠는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과 관점의 전환에 있었다.


첫째, 내가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흐름 속에서 시니어 리더십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 상황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으리라는 예감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업계의 동료들에게 솔직하게 내 상황을 털어놓았고, 돌아온 건 의외로 따뜻한 말들이었다. “눈높이를 조금 낮춰서라도 도전해 봐.”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조언들 속에서 나는 이 시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통과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중요한 것은 공백이 아니라, 그 공백을 어떻게 채우느냐였다.


둘째, ‘지금의 나’를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왜 나일까’라는 질문은 자주 떠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질문은 점점 무의미해졌다. 그보다는 ‘지금 나는 어떤 감정에 머물고 있는가’를 마주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자책보다는 자기 인식이 먼저였다. 나는 짧은 메모와 단어 하나로라도 내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매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큰 힘을 주었다. 변화는 결국 바깥이 아닌,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셋째, 이 시기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늘 그랬듯, 나는 다시 책 속에서 길을 찾았다. 찰스 핸디는 『포트폴리오 인생』에서 안정된 곡선의 정점이 오기 전에, 새로운 곡선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시그모이드 곡선의 통찰은,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멈춤’이 아니라 ‘전환’의 시작일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윤석철 교수는 『삶의 정도』에서 ‘우회 축적’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매는 가장 빠르게 목표를 향해 날아가기 위해 잠시 수직으로 떨어진다.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가속을 위한 선택이다.

나는 이 두 메시지를 곱씹으며 나만의 의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커리어란 대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고 단단하게 뻗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마디’가 필요하다. 마디는 멈춤이 아니라, 내면의 축적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나중에 ‘잘 보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나를 알아가고, 이 시간을 의미 있게 살아내기 위한 내 삶의 일부다.

그리고 나는 지금, 새로운 곡선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






Confidence: 자신감 갖기


쉼 없이 20년 넘게 달려온 직장 생활이 멈추자, 예상치 못한 변화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나를 증명하던 명함이 사라지고, 고용보험을 신청해야 했고, 의료보험은 스스로 납부해야 했다. 출퇴근 없는 일상은 낯설고 막막했다. 무엇보다도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 한동안은 멍하니 하루를 흘려보냈다.


가장 버거웠던 건 ‘불확실성’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급함은 커졌고, 한때 기다려지던 주말과 연휴는 오히려 채용의 시계가 멈춘 듯한 답답함만 더했다. 거절의 순간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나이, 직급, 이전 연봉, 전문성… 지금껏 쌓아온 커리어가 오히려 나를 옭아매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분명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존감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인들의 조언은 처음엔 분명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관심과 걱정조차 서로에게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때로는 따뜻한 위로조차 나의 자신감을 무너뜨리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찼다. 그 속에서 내가 찾은 해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Present’를 ‘pre-sent’라고 나누어보면 ‘이미 보내어진 것’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1초만 지나도 현재는 곧 과거가 되고, 미래는 끊임없이 현재로 밀려온다. 결국 내가 붙들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present’는 현재이면서 동시에 ‘선물’이라는 뜻도 되는 것 아닐까.


나는 하루를 시간 단위로 나누어 기록하기 시작했다. 의미 있었던 일, 감사한 순간을 하나하나 적어 나갔다. 그렇게 작은 성취들이 쌓이며,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나 자신의 가치를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새로 시작한 명상은 나를 붙드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하루의 리듬을 잡아주는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내가 나를 믿지 않는데, 누가 나를 믿어줄 수 있을까?” 에너지는 전염된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과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나를 긍정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불확실한 내일을 걱정하기보다, 오늘의 나를 지키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결국 지금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전부니까.






Embrace: 포용하기


구직 활동만으로 하루를 보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배우고, 경제적으로도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나를 가로막는 건 외부가 아닌 ‘내 안의 목소리’였다.


‘이게 정말 나중에 도움이 될까?’

‘굳이 이걸 해야 하나?’

‘주변에서 어떻게 볼까?’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괜히 시작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선입견이 내 머릿속에서 마치 빅데이터가 인공지능을 통해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듯이 ‘근거 없는 판단 알고리즘’을 구축하고 있었다. 내면의 자아는 끊임없이 경고 벨을 울리며 나를 주저앉혔다. 무엇보다 이 저항을 극복하는 것이 시급했다.


브루스 파일러 저서의 『위기의 쓸모』에 따르면 사람은 평균적으로 3~4년을 주기로 크고 작은 변화를 겪는다. 그중 삶의 축이 바뀌는 정도의 큰 변화는 생애 3~5회이며, 이러한 변화에는 대체로 5년 정도 전환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기간은 한마디로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시간으로, 나 역시 두려움을 넘어 새로운 시도로 나아가는 시기로 삼기로 했다.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일’의 범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보수도 크게 따지지 않았다. ‘지금 하는 일이 훗날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지도 모른다 (Connecting the dots)’는 생각이 불편함을 덜어주었고, 나는 대부분의 기회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전직(轉職)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 ESG 컨설턴트로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내 전문성을 살려 전략·마케팅 강의를 진행했으며, 스타트업의 자문 역할도 맡아 조언을 제공해 보았다. 과거 직장에 있을 땐 진행하지 않았던 해외 소규모 프로젝트나 컨설팅 요청도 가능하면 모두 수락하여 경험의 폭을 넓혀갔다. 최근에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에도 선정되어 참여 중이다. 그리고 비트윈잡스 커뮤니티 미팅에서 내 이야기를 공유하며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역시 이 여정의 일부다.


그동안 만나온 많은 이들은 이런 전환기에 재취업, 창업, 프리랜서, 개인사업 등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결국 하나의 길에 집중해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여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뾰족한 어느 하나에 대한 확신과 절실함이 부족하다는 뜻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본질적인 목표를 잊지 않고 빠르게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활동은 단순히 불안함이나 시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인식과 경험을 넓히고 성장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스스로에게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면, 노력뿐만 아니라 ‘약한 연대(Weak tie)’와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인생의 기회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고 했지만, 전환기에는 오히려 선택의 C보다 자신감(Confidence), 집중(Concentration), 우연(Coincidence)의 C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전환기를 맞으며 나는 ‘대나무의 마디’처럼 이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채워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이 시기는 단지 채움의 시간이 아니라, 다음 성장을 준비하기 위해 내려놓고 비우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터널 끝의 빛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내디딘다. 알아차리고(Awareness), 자신감을 잃지 않고(Confidence), 모든 것을 포용하며(Embrace). 이 시간이 지난 뒤엔 한층 더 성장한 나 자신을 회고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가 모두 자신만의 ACE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성장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