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력
책 <퓨처셀프>에는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당연히 패배다.'라는 챕터가 있다.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챕터이기도 하다. 내 한계를 살짝 넘어서는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보면 당연히 실패도 하고 못난 모습도 보여주고 싫은 소리도 듣게 된다. 자괴감에 빠지거나 심한 경우 자기혐오에 빠진다. 다시 시도하기 두려워지기도 한다. 반면 경기장 밖에서 실패 없이 안정된 삶을 누리며, 경기장 안을 바라보는 일은 참 쉬운 일이다.
경기장 밖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장소다. 경기장 밖에 있으면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없다.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뒷짐 지고 비평이나 할 줄 알지, 진정한 프로는 되지 못한다.
<퓨처셀프/벤저민 하디>
책을 읽고 머릿 속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 삶이 그랬다. 회사 일은 어느정도 익숙해져서 관성으로 하고 있고, 매주 가는 자세교정요가 수업은 거의 1년 넘게 듣고 있어서 어렵지 않고, 글을 쓸 때도 전에 썼던 비슷한 류의 글들을 디벨롭하는 수준으로만 진행하고, 나와 생각이 맞고 마음이 편한 사람 위주로 만나고... 내가 못하거나 어려워하는 일은 시작조차 하지 않는 삶. 나는 늘 경기장 밖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놓고는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넘어서는 노력을 하는 경기장 안의 사람들을 보며 평가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안 쓰던 툴을 조금씩 써본다든가, 기존과 다른 템플릿을 만들거나, 관성적으로 진행해오던 일들에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나가기 시작했다. 늘 하는 익숙한 자세교정요가만으로는 근력/체력이 생길 수 없겠다는 생각에, 바로 헬스장에 등록해서 PT를 끊었다. 만날 때 다소 기가 빨리기도 하는, 하지만 나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는 이들과 만나는 약속을 잡았다.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차가 생긴 이슈가 있긴 하나, 여튼 늘 운전을 두려워했던 나에게는 큰 한 걸음).
중간 진행 결과는?
회사에서는 내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고 할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해보지 않았다면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몰랐을 것이다. 리더가 되기 전에 나의 부족함을 알아서 다행이고, 이제 그 부분을 메꿔나가면 된다.
헬스장에서는 매일 낑낑거리고 힘들어하고 있지만,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조금씩 늘려나가게끔 도와주시는 좋은 PT쌤을 만나서 (아주 미세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내게 기빨림을 주는 사람들의 경우, 만나기 전에는 이런저런 걱정이 있더라도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역시나 좋은 영감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운전면허는....
운전면허시험, 시작은 순조로웠지만 중간 상황은 참담했다.
호기롭게 광명운전면허학원을 등록하고, 학과교육을 이수하고, 바로 필기시험에 합격하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남들보다 방향 감각이 부족한 나를 알기 때문에 기본반이 아닌, 35만원 비싼 향상반을 등록했다.
대망의 장내기능교육. 2시간 씩 총 3회 수업을 받고 시험을 보기로 했다. 기본교육이 4시간인데 6시간을 교육받는다면 당연히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혹자는 독학으로도 합격한다고 하니 말이다.
-첫 번째 수업에서는 기본적인 설명이 진행되었고, 강사님이 장내기능 코스를 돌며 설명을 해주셨다. 친절하신 강사님께서 이것저것 설명해주시고 옆 좌석에서 브레이크도 미리 밟아주시고 핸들링도 많이 해주셨는데, 오히려 나는 브레이크나 핸들링에 대해 감을 잡지 못했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굉장히 많이 혼났다. 오기가 생겨서인지 핸들링이나 브레이크에 대해서 감을 많이 잡았다. 강사님도 내리시면서 "그래도 2시간 동안 일취월장했네요"하시고 가셨다.
-세 번째 수업은 시험 당일에 이뤄졌다. 시험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설친 나는, 유튜브로 기능시험과 관련한 모든 영상을 찾아보며 감을 익히고 깜지까지 썼다. 수업을 받으며 여러 번 모의시험을 봤는데 계속 100점이 나왔다. 수업을 마칠 때도, "이따가도 차분하게 보시면 합격하시겠네요, 화이팅입니다."가 강사님의 마지막 인사였다.
-대망의 장내기능시험. 차에 혼자 탑승한 건 처음인데다 막상 시작하려니 너무 긴장되고 떨렸다. 심호흡을 하며 출발했는데, 경사로 구간 직전에 돌발이 나왔다. 돌발버튼을 누르면서 화면을 보니, 시작할 때 켰던 좌측 깜빡이를 끄지 않아서 5점 감점되었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순간 당황해서, 돌발이 해제된 것도 놓치고 잠시 멈춰있었다. 그래봐야 5점 감점이니 괜찮아, 라고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교차로를 지나 대망의 주차구간으로 진입했다. 학원에서 배운 규칙대로 연석에 맞춰 핸들을 감고 들어갔는데 뭔가 이상했다. 주차를 하면서도 뭔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 원칙대로 했다. 탈선 감점되었다는 멘트가 들렸고, 그 상태에서 주차를 수정하지 못하고 그대로 움직이던 나는 결국 실격 멘트를 듣게 되었다. 감독관 님이 오셔서 운전석에 타시고 나는 대기실 앞으로 연행(...)되었다. 교육을 받으면서도 탈선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너무 황당했다. 하필 1번 순서라 모든 시험대기자가 날 바라보고 있었는데 창피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재시험으로 인해 들어갈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너무 짜증이 나고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향상반이라 재검정료는 무료였고, 다음주 토요일이면 운전 감을 더 잃을 것 같아서 1시간 실습을 추가 결제하고 울먹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자기연민에 빠진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향상반이라 추가교육까지 들어놓고는 실격하는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아서 3n살의 나이에 빨개진 얼굴로 울먹이며 집에 돌아왔다. 오전 연습 때 점수가 계속 좋았기에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그랬다.
한참을 멍하니 자기연민에 빠져서, 기능시험 합격률이나 실격/불합격한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첫 시도에 불합격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또 신기했던 건, 장내기능시험에서 수 차례 떨어져본 사람들이 도로주행시험에서는 한 번에 합격하는 사례가 꽤 많다는 것이었다. 비록 돈과 시간이 더 들지만, 그만큼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니까. 이참에 핸들링이나 기능을 더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서 힘들다고 포기해버리면 돈을 날리는 사람이 되지만, 추가교육을 들어서라도 합격한다면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돈들여서 자격증 취득한 사람이 된다. 살면서 쉽게 얻은 것들도 분명 있는데, 이번 과제는 조금 더 노력해서 얻어야 할 뿐이다.
모의시험은 본시험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 시험 당일 마지막 교육에서, 계속된 모의시험을 보며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연습을 더 해볼 걸 그랬다. 계속 모의시험 100점이 나오고, 강사님도 별 말씀 없이 순조롭게 수업이 흘러가니까 그 사실에 내가 만족했던 것 같다. 오히려 시험에서는 어떤 차가 배정될 지 모르고 더 최악의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일부러 탈선을 해본다던지 의자 위치를 다르게 잡아서 해본다던지(이번 장내기능에서 의자 위치를 잘못 잡은 것이 폐인 중 하나인 듯하다) 여러 시도를 해서 강사님께 코칭을 받았어야 했다. 이번 시험에서 주차 위치를 잘못 잡았을 때 어떻게 조정하는지 조금이라도 연습이 되어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다.
직무와 관련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 시험의 경우 시험 직전 순환에서 모의고사를 보고 모범답안을 선정한다. 그런데 단기 합격자들이 '모의고사는 본시험 아니니까 거기에 매몰되지 마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의고사에서 모범답안에 선정되는 것은 기쁜 일이긴 하겠지만, 본시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특히 모의고사는 강사들이 대부분 범위 지정까지 해주므로 그에 맞춰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시험은 범위가 한정된 것이 아니니까 모의고사에 맞춘 공부는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모의고사' 혹은 '모의시험'은 내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직면할 마지막 기회다. 모의고사 잘 보겠다고 노력해서 모범답안에 만족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연습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장내기능 실격은 너무 마음아픈 일이었지만, 깨달음을 더 많이 얻었다. 자기연민에 빠질 시간에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의 운전에 많은 난관이 있을텐데, 미리 각성하게 해준 일이라 생각하며 감사히 여겨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