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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경 Aug 04. 2024

고수리 작가의 『고등어』(세미콜론, 2021년)을 읽고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고수리 작가님과의 만남은 세종사이버대학교 세작교에서 에세이 쓰기를 배우기 위해 등록했다가 온라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아가씨처럼 앳된 얼굴, 환한 미소, 작가님의 모습은 너무 여려 보였지만 강의 내내 두 시간 내내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모습에 폭 빠지고 말았다. 열정이 나를 끌어당긴 것 같았다. 

작가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망원동으로 찾아가서 도서를 구입하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작고 어여쁜 손으로 또박또박 써주신 사인이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학교를 휴학하고 나니 교수님들이 더 그리웠고 그리운 마음에 그동안 사놓았던 책을 다시 꺼냈다. 

이 책은 작가님 어릴 적 집밥과 식구들의 이야기가 감동과 재미로 버무려져 있다. 맛있는 책 <고등어>. 

에세이 제목마다 달린 부제가 재미있는 책이다.


<엄마 손바닥 같은 가재미 : 가자미> 

누가 손바닥으로 나를 좀 만져 주었으면 싶은 날이 있다. 속이 아프거나 마음에 찬 바람이 불 때 어김없이 배와 등을 쓸어주던 납작하여 여윈 손바닥들이 그리워진다. -17P-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어른 중의 하나인 나도 누군가가 폭닥 보듬어주고 등 두드리며 괜찮니? 잘 지내니? 하고 다정스러운 말을 건네주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날씨는 더워도 마음속은 상당히 춥고 쓸쓸하고 그런 날 말이다. 가자미같이 거칠지만 따스한 손이.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중략-

나는 아픈 것도 잊고 잠이 들었다. 엄마 손바닥에 배를 맡긴 그 시간이 좋아서 조금만 꾸룩거려도 조로록 달려가 배를 까고선 엄마 앞에 누웠더랬다. -20P-     


상상만으로도 포근한 잠이 올 것 같다. 나도 나도 하면서 누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제는 나이 들어 내가 아이들의 배를 쓸어주고도 지났을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 앞에선 아이처럼 배를 드러내고 쓰다듬어 주었으면 할 때가 있다. 사람 손이 그립다는 건 복닥거리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겠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먹을 만치만 톨톨 따다 무쳐 먹던 : 보리 토시>

예닐곱 살 땐 엄마랑 소쿠리 하나씩 옆구리에 끼고 냉이랑 달래, 쑥 같은 봄나물들을 캐러 다녔다. -중략- 캐온 봄나물들은 깨끗이 씻어서 밥을 지어먹었다. -중략- 향긋하니 쫀득한 쑥버무리 한입 씹으면 입안에 봄이 벅적거렸다. -25P-    

 

강원도 바닷가 동해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보리 토시, 톳 이런 말들은 서울에 와서야 알게 된 말이고 아직도 낯선 음식 재료이다. 그래서인지 보리 토시보다 쑥이 더 정겹게 느껴졌다. 

어릴 적 겨울이 막 지나고 볕이 따습게 느껴질 때면 동네 언니들이랑 산과 들로 쑥 캐러 다녔다. 집에 와서 쑥을 깨끗이 다듬고 씻어서 밀가루 묻히고 사카린도 조금 넣고 찌면 달고 향긋한 쑥버무리 완성이다. 그때 따로 군입질 거리가 없어서였는지 추억 속의 먹거리들은 왠지 더 맛있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작가님은 작은 나물에도 맛깔난 맛을 입히는 재주가 있으시다.  

    

<볼그스름한 초여름의 맛 : 챗국>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국이다. -중략- 짜거나 감칠맛 돌지 않게, 그저 슴슴한 듯 담담하고 깔끔한 맛이어야 한다. -41P-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글이다. 시장에 얼른 가서 무도 콩나물도 한 줌 사다가 한번 끓여서 먹어보고 싶은 맛이지만 작가님의 그 맛은 또 다른 분위기가 난다. 구경도 못해 본 시원하고 슴슴한 챗국을 나도 한 사발 마신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하지만 손끝에 볼그스름한 봉숭아 물을 들이고 마시는 챗국 맛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그런 추억을 가진 작가님이 마구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아랫집이랑 나눠 먹으렴 : 김치>

엄마는 말했다 “언니 만삭이라며, 그맘땐 먹고 싶은 거 꼭 먹어야 한다.” -중략-

살면서 한 번이라도 이런 음식을 만나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 평생 기억에 남은 이유가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어떤 음식은 손으로 만드는 위로 같다. -49P-  

   

손으로 만드는 위로의 음식. 뭐라 덧붙일 것도 없이 깔끔한 한 문장이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가 되는 음식을 먹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간절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먹지 못해 아쉬웠던 군만두. 임신으로 배가 불러 혼자 중국집에 가서 군만두를 시켜 먹을 용기가 없었다. 대신 시장 난전에 앉아 잡채 한 접시를 시켰다. 먹으려는 순간 올라오는 기름에 전 내에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하고 젓가락을 놓아 버렸다. 그땐 왜 그리 서운하고 섭섭하고 엄마가 그리웠는지 모른다. 지금도 군만두를 좋아한다.    

  

<맛있는 거 한입이라도 떼어 주는 게 사랑이지 : 번개시장>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이 방에 숨어 들었다. –중략- 맛있는 거 한입이라도 떼어주는 게 사랑이지. 타지 생활을 하게 된 후로 엄마 집에 오면 이상하게 끝도 없이 잠이 쏟아졌다. 엄마는 이불을 폭닥 덮어주며 말했다. “원래 집 떠나면 고생이다. 긴장이 풀려서 그래. 사는 게 피곤해진 걸 보니 너도 어른이 다 됐네” -151P-     

엄마와의 추억, 할머니와의 치글 치글 고등어 굽는 이야기. 정겹고 흥겨운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쏟아져 내렸다. 나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달려가서 이불 덮어쓰고 세상모르게 잘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구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엄마 품이 그립다.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내 발등을 적신다. 꽃다운 나이에 전쟁의 화마 속에서 원치 않은 결혼을 하고 자식 낳고 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내 엄마를 작가님의 엄마 속에서 찾아내곤 폭풍 같은 오열을 했다. 눈물 닦고 코 한번 힝 풀고 나서야 책장을 덮었다. 그립고 재미있고 슬프면서도 정감 있는 <고등어>. 또 다른 재미난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한 책.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다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다. 작가님 열강의 힘은 어릴 적 맛있게 먹던 고등어, 보리 토시, 폭 꼬은 미역국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도 오늘 시원한 챗국이나 만들어 먹어볼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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