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16 - Mission 1 to 10
작년 여름 수개월간 꾸준히 테스트해오던 수많은 판매 전략 가설 중 하나가 갑자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고 지금까지도 매 월 두세 개의 신규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 어느덧 서른 개가 넘는 고객사를 보며 우리는 더 이상 '이 제품이 시장에서 통할까?'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달에는 월 반복 매출이 80%나 증가하는 경험도 했다. 너무 신이 난 나는 재무제표를 보며 '우린 언제 유니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신나는 상상 속에 이런저런 분석을 하다 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꾸준히 열심히만 하면.. 내년에 망한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매출이 아직 비용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란 원래 있는 시장에 또 다른 플레이어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장 그 자체를 개척해 내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음식점이나 쇼핑몰처럼 초반부터 매출을 만들 수 없다. 원래 누군가 찾던 제품군 혹은 서비스가 아니다 보니 첫 매출을 만들기까지 보통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우리만 보더라도, 초반에는 고객의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단계가 필요했고, 그다음 시장이 반응하는 솔루션을 내놓을 때까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버리고를 1년간 반복했다. PMF를 찾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우리 프러덕의 세일즈 성공률은 70%이고, 잔존율이 1년 넘게 100%에 가까우니 마침내 고객이 좋아하는 프러덕을 만들었다 할 수 있지 않는가?
하지만 불행하게도 고객이 좋아하는 프러덕을 만들었다는 것이 곧 생존을 의미하진 않는다. (근데 스타트업이 생사의 문제를 벗어나는 순간이 있기는 할까?) 그다음 단계인 시장진출 최적화(GTM Fit) 단계가 있다. 우리가 만든 이 프러덕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을 찾아 그들에게 세일즈 기회를, 그것도 대량으로 얻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끝난 줄 알았던 무한한 가설 검증의 굴레를 다시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필요한 전략을 우리가 가진 비용을 다 소진하기 전까지 찾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무모한 짓은 왜 하는 것일까? 한 달 매출이 몇 천만 원 밖에 되지 않는 회사가 왜 열 명에 가까운 직원을 채용하고 40억이란 금액을 투자받을 수 있었을까? 왜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스타트업에 사람들이 몰리는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근데, 우리 팀은 이 멤버로 내일이라도 당장 연매출 100억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우리 프러덕은 컨설팅이나 외주처럼 인력이 투입되는 일이 아니다. 고객이 우리 프러덕을 사용해보고 싶으면 스스로 설치해서 가입하고, 준비해서 테스트해 볼 수 있다. 지금은 물론 우리가 세일즈를 위해 고객을 만나지만 우리의 GTM이 더욱 견고 해 질수록 이 과정도 더욱 단순해지고 결국 우리 팀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나 우리 프러덕은 고객이 한 번 온보딩이 끝나면 그다음은 우리가 따로 할 게 없다. 고객은 그냥 결과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우리 프러덕은 고객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고, 고객들은 우리가 벌어다 주는 돈에 1/10도 안 되는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 같은 SaaS 서비스의 성장은 단순한 플러스나 마이너스가 아니라, 곱셈조차 넘은 지수 함수적 성장이 가능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이러한 성과를 10명도 안 되는 팀에서 만든 것 자체가 대단한 건 맞지만 여전히 생존과 다투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70%나 되는 높은 세일즈 전환율, 100%에 가까운 고객 잔존율, 이 놀라운 두 퍼널의 전환율을 들으면 남은 건 너무 명확해진다. 이 퍼널을 뚱뚱하게 만들어 줄 세일즈 기회 총량의 증가이다. 우리 팀은 전사적으로 신규 세일즈 리드를 더 많이 모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고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미션 1 to 10이라 부르기로 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0 to 1은 잘 달성했으니, 스케일 단계인 1 to 10을 달성하자는 뜻이다.
과연 우리는 달성할 수 있을까? 과연 내년에도 살아 있을까? 도전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우리는 실패에서 배우고 아픔을 통해 성정 한다. 나는 지난 몇 년간 개인적으로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여러분들은 계속해서 우리 팀의 성장 브런치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