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Z세대는 부를 노래가 없기 때문에
언젠가 신입 후배들과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그들은 1990년대 중반 생들이다. 우린 나이, 경력 상관없이 저마다 자유롭게 노래 예약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놈들이 우리 때 유행했던 노래를 줄지어 예약했다. 2000년대 초 노래들, 특히 발라드 위주로.
얀 '그래서 그대는', 빅마마 '체념', 윤도현 '사랑했나봐', 바이브 '프로미스 유', 플라워 3곡(굿바이, 눈물, 플리스), 김동률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이지 '응급실', 임창정 '소주 한잔', 엠씨더맥스 '사랑하지 마요', 김경호 '금지된 사랑' 등이 예약됐다.
꼰대가 되는 게 싫어서 한 마디했다.
"너희들 부르고 싶은 걸 불러. 각자 세대의 노래를 부르는 게 좋지."
그러자 후배들이 발끈한다.
"친구들과 노래방 가면 이 노래들을 불러요. 제 십팔번은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이에요."
'이 밤이 지나면'은 무려 1991년 곡이다. 몇 안 되는 올드 소울을 가진 녀석들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문득 애달팠다. 남부러울 것 없는 열정과 패기, 실패마저 자양분이 되는 젊음, 가능성이 열려있는 나이. 모든 게 부러운 Z세대인데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걸까?
생각해보니 그들 세대에는 가창력을 뽐낼만한 노래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가요는 분위기 싸움이다. 고음을 내질러 청중의 가슴을 뻥 뚫어주던 보컬리스트들은 '고음충'으로 격하되어 자취를 감췄고, 감미롭고 달달한 분위기의 팝이 시장을 장악했다.
듣기 부담 없고 분위기 있는 팝이 안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노래방에선 다른 얘기다. 한두 시간을 로멘틱 무드의 노래만 한다면 지루해 참을 수 없을 지 모른다. 케이팝 아이돌 노래를 부르는 것도 한 두번이지!
무엇보다 노래 좀 한다는 사람일수록 화끈하게 고음을 내지르며 만족감을 느끼고픈 게 보편적인 심리다. 그럴 땐 듣는 재미도 있어서 노래를 안 불러도 즐겁다. 그런 마음을 풀어줄 요즘 노래가 없어서 Z들은 옛날 노래를 부른다. 가엽게도.
문화는 상대적이다. 내 입장에서 가요는 2000년대 초반이 최전성기라고 본다. 1980년대 가요들이 그 뿌리로 작용해 1990년대 꽃을 피웠고, 2000년대 와서 가장 화려하고 달콤한 향기를 뿜어냈다. 엠피쓰리에 담긴 수백, 수천 곡들은 당시 쏟아진 결과물들이며 이들 가요를 누리어 가짐으로써 노래방 문화도 전성기를 이뤘다.
나는 PC방보다 노래방을 더 많이 간 마지막 세대다. 시간 나면 모여서 노래했고 가창력을 뽐내는 게 즐거움이었다. 부를 노래가 너무 많아 늘 시간이 부족했던 그때가 우리 가요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반면 요즘 애들은 뭘 부르나? 랩을 멋들어지게 하는 건 봤어도 기억에 남는 가창을 본 적은 없다. 난도 높은 춤과 스타일리시한 음색으로 대변되는 최근의 케이팝은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할 뿐 노래방에서 놀기에는 재미가 없다.
물론 케이팝의 방향을 노래방에 맞추는 게 옳다고 할 순 없다. 그저 Z들이 우리 때 노래를 찾아보고 부르는 데 만감이 교차하는 건 사실이다. 우리 세대 노래의 진면목을 Z들에게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가도 한편으론 안타깝다. Z들은 노래방 대표곡이 없다. 그건 팩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