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ditor Not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ever Apr 03. 2023

웰다잉은 잘 죽는 법이 아닙니다

묫자리는 비싸게 주고 사면서 정작 자기 삶 저장해둔 곳은 없나?


웰다잉(Well dying) 뭘까?

직역대로 '잘 죽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웰다잉은 고령화에 따라 최근 언급량이 급증한 키워드인데 그 실체가 모호하다. 그래서 취재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었다. 가장 큰 것이 웰다잉은 죽음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살아온 생애를 정리하는 데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정리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것이 핵심이다. ‘생애보 쓰기’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 대부분은 ‘나 따위가 뭐라고 생애보를 남기나’라고 여긴다. 하지만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아온 흔적 중에는 뭐가 있는지를 남겨두는 건 의미가 크다. 아무리 평범한 인생을 살았더라도 사회적 의미는 있기 마련이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브런치에라도 남겨야

생애보를 남기는 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글 쓰는 게 어려운 사람이 있을테고, 사진과 물품을 정리하는 데 애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생애보를 쓰기 쉽도록 도와주는 인터넷 사이트도 많아졌다. 브런치에 일기쓰듯 남겨도 된다.


생애보에는 대단한 업적을 남기는 게 아니라 자신이 남기고픈 말을 쓰면 된다. 예를 들어 전업 주부였던 사람은 ‘나는 이런 엄마로 살았다’라고 남기면 된다. 혹은 ‘나는 이런 남편(부인)으로 살았다’라고 쓸 수도 있다. 직업을 떠나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그 일을 하며 가졌던 자부심에 대해 써도 좋다. 조사해보니 죽어가는 사람 중에 열에 아홉은 자기 일에 자부심이 컸다. 그런데 쑥스럽고 지나친 겸손 탓에 하고 싶은 말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생애보 쓰는 데 주저하게 된 데는 문화와 환경의 영향도 크다. 우리 주변에는 생을 기록하는 문화가 없을뿐더러 추모하는 문화도 생소하다. 자신의 묫자리는 비싼 돈을 들여 정하면서 정작 자기 삶의 기억을 남기는 곳은 없는 아이러니 속에 사는 셈이다.



안면 없는 지인 가족 추모가 진정한 추모일까?

장례식만 해도 부조금 낸 뒤 절하고, 육개장 한 그릇 먹고 가는 게 일상적이다. 고인이 누군가의 가족, 지인인 줄 알고는 있지만 자신과는 특별한 관계가 아닌 경우가 많다. 즉, 우리 장례 문화는 유족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문화이지 고인 중심이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 진정한 추모는 나올 수 없다.


실제로 우리네 장례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교단체의 추모나 영결식은 형식화되어 있다. 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고인을 내 지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추모한다는 것도 사회적 허사다. 그런 인사치레가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내용 없는 허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고 이를 바꾸려면 지역사회, 공공기관 등이 앞장서서 문화 자체를 뒤집어야 한다.


만일 고인을 추모하고 싶다면 ‘하늘나라에 잘 가셨을 것’이라고 인사치레만 하고 끝날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남겼던 말, 일기, 해왔던 일 등을 기록하는 것이 훨씬 귀중한 일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때 생애보를 직접 써놓는다면 남은 이들이 기억하고 추모하는 웰다잉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지 모른다.


미국의 경우 지역사회에 ‘히스토리컬 소사이어티(Historical society)’라는 조그마한 아카이브가 있다. 해당 지역에 살던 이의 유산, 기록 등을 보관하는 장소다. 공공기관이 개인의 일기장, 기타 생필품 등을 보관해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왜 이런 공간이 없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웰다잉은 자신의 의지로 마무리하는 것

어차피 사람은 나이를 먹고, 노년기에 ‘절대적 의존기’를 거친다. 절대적 의존기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기를 말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100세 시대를 맞이 했지만, 그런 물리적인 수명 말고 건강 수명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강 수명은 67세다. 즉, 70세 정도부터 약 100세까지는 병을 앓고 지낸다는 말인데, 75세가 넘어가면서 가족, 간병인 같은 타인에게 의존하는 시기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는 혼자 힘으로 침상에서 못 일어난다거나 금융, 조리, 목욕까지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절대적 의존기가 길어질수록 사회적 부담은 커지게 된다. 인사말로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라는 말들은 하지만 누군가는 그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져야 하는 게 현실이다. 웰다잉은 절대적 의존기를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 대해 준비하는 거다. 미리 생각해두지 않으면 절대적 의존기에 타인이 결정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결국 삶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의지로 산다는 게 웰다잉이다. 자기 삶의 의미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의미를 찾는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활동이 됐든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찾는다면 그 자체로 웰다잉 하는 길이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를 한다면 그게 자신에게 힘을 주고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로수길 누가 죽었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