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베이 맘스틴 초기 앨범(1~4집)
잉베이 맘스틴(혹은 잉베이 말름스틴, Yngwie Johan Malmsteen)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6년 전이었다. 항상 격한 랩 음악을 좋아했듯이, 락을 들어도 속주를 찾게 됐는데, 자연스럽게 찾게 된 인물이 잉베이였다. 소장하고 있는 1집부터 4집까지에 대한 사견을 열거하는 가벼운 글을 작성해 보았다. 타인의 의견은 조금도 반영하지 않은, 사견 100%의 글이다.
[Rising Force] (1984)
스웨덴 출신 1963년생 기타리스트 잉베이 맘스틴의 첫 솔로 앨범은 헤비 메탈이라는 장르의 역사에 길이 남는 걸작으로 굳어지고 있다. 타 기타리스트에게 끼친 영향력, 1986년 그래미 베스트 록 인스트루먼틀 퍼포먼스 노미니스의 경력 등 앨범의 가치를 더하는 사건과 일화가 무수히 많다.
장담하건대, 잉베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Far Beyond the Sun"을 연주한 횟수는 1000회 이상일 것 같다. 연주하는 일이 너무 잦아서인지, 가끔은 조금씩 애드리브를 가미하기까지 할 정도이니... 그리고 "Far Beyond the Sun"과 함께 잉베이의 라이브 무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Black Star"가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보컬리스트 없이 세션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곡이 대다수이지만, 제프 스캇 소토(Jeff Scott Soto)의 목소리도 꽤 훌륭한 첨가제 노릇을 했다. "As Above, So Below" 같은 곡은 보컬의 힘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유튜브에 'Far Beyond the Sun cover'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이 무시무시한 속주 트랙을 커버하는 괴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지구상에 괴물이 얼마나 많이 서식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아 이 외계인들...). 애프터스쿨의 멤버 '이영'도 이 어려운 속주 트랙을 커버하며 유튜브 조회수 40만을 기록했다. 어느덧 이 곡은 기타 속주에 맛을 들인 사람이라면 한번쯤 도전할 만한 과제로 군림하고 있는 듯하다.
[Marching Out] (1985)
잉베이 맘스틴에게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없었다. 열정의 에너지로 똘똘 뭉친 후속작을 들고 나왔으니 말이다. 1집에 이어 2집에서도 제프 스캇 소토가 보컬을 맡았다. 나는 "Disciples of Hell"과 "I Am a Viking"으로 이어지는 중반부를 무척 좋아했고, "Caught in the Middle"의 기타 리프도 유난히 좋아했다. 잉베이의 초기 시절 앨범 중에서 '공격적'이라는 표현이 제일 잘 어울린다. 그만큼 인간의 아드레날린을 활성화시키는 곡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어그레시브의 아이콘을 자처하는 잉베이의 열정적인 연주는 기본이요, 제프 스캇 소토의 보컬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Trilogy] (1986)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용 때문에 혹자는 '삼룡이' 앨범이라고 부른다는 소문이 있다(거부감이 조금도 생기지 않는 별칭이다). 앨범 커버에 담긴 잉베이의 포즈는 대학교 재학 시절 동아리 선배 한 분께서 재현하며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명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Queen in Love"라는 걸출한 트랙의 존재 때문에 단 한 번도 무시해본 적이 없다. 구매 초기에는 고음역대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보컬리스트의 실력에 감탄하며 "Magic Mirror"를 계속 듣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Queen in Love"를 압도적으로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그만큼 독보적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곡이다.
"Dark Ages"처럼 황량하고 빈티지 느낌이 강한 트랙도 좋았고, 잉베이 라이브 앨범에서 단골 코스가 된 첫 곡 "You Don't Remember, I'll Never Forget"도 가끔씩 듣곤 했다.
[Odyssey] (1988)
인지도 면에서는 데뷔 앨범 [Rising Force]가 늘 1등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잉베이의 정규 앨범은 [Odyssey]이다. 싱글 컷 여부를 제외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잉베이의 트랙 "Faster than the Speed of Light"도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내가 이 앨범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타 속주도 나무랄 데가 없고, 건반을 비롯한 다른 세션도 현란한 연주에 능하며, 특히, 보컬리스트 조 린 터너(Joe Lynn Turner)와 잉베이의 궁합이 잘 맞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1집부터 4집까지 참여한 보컬리스트의 목소리 중에 조 린 터너의 허스키한 보이스가 잉베이의 기타 속주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말랑말랑한 코러스의 "Heaven Tonight"을 제외한 나머지 트랙은 거의 다 좋아했다. 초반부 "Hold On"의 강렬한 드럼, 초장부터 강한 기타 연주로 승부하는 "Riot in the Dungeons", 차에서 툭하면 후렴구를 흥얼거리게 만들었던 "Deja Vu", "Crystal Ball" 등 수록곡마다 애착이 간다.
참고로, 유튜브에서 잘 찾아보면 "Faster than the Speed of Light"의 라이브 영상을 발견할 수 있다(매우 희귀하다). 혼자서 수십 번을 돌려봤다.
정규 앨범을 기준으로 선을 긋는다면 정확하게 4집까지가 잉베이 맘스틴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한다. 라이브 앨범까지 합하면 1989년의 [Trial by Fire: Live in Leningrad] 시절까지가 그의 전성기였던 것 같다(이 라이브는 음원도 좋지만 그보다 DVD 영상이 진국인데, 국내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아서 해외 주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1990년의 [Eclipse]부터는 듣기 난감한 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래도 나는 그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어 가끔씩 2000년대의 앨범을 찾아서 들어보기도 한다. 하나둘씩 들어보다가 극악의 속주곡 "Molto Arpeggiosa"가 담긴 [War to End All Wars]를 구입하기도 했다. 오페라 분위기가 나는, 나쁘지 않은 음반이었다. 당시 서울에 투어를 왔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2015년 현재, 잉베이는 여전히 불타는 창작욕을 지니고 있다. 2015년까지 그가 만든 정규 앨범은 20장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제는 초기 시절의 강렬함을 찾기 힘들어졌다. 마치 천재의 재능을 1980년대에 모두 소진해버린 것 같다. 그가 이끄는 밴드의 세션 교체 역사를 보면 얼마나 막장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잉베이 본인이 담당하는 기타를 제외하고 드럼, 퍼커션, 베이스, 보컬 등 모든 세션에서 잦은 교체가 이루어졌는데, 작년에 우연찮게 본 잉베이 맘스틴 밴드의 근황을 보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정말 볼품없는 밴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1980년대에 이룩한 찬란한 업적은 계속해서 가치를 인정받으면 될 것이고, 안타깝지만 최근의 활동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그가 헤비 메탈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을 스스로 갉아먹지는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