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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Sep 21. 2023

너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너를 나에게 말해줄 수 있는 날까지. 

-쏴아.


변기의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바로 아이의 발소리가 들린다. 


"문 닫고 불 꺼야지."


내 말에 다가오던 발소리는 다시 멀어지는듯하더니 스위치는 끄는 '탁' 소리와 문을 닫는 '스으윽 달칵' 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아이는 좀 전보다 더 경쾌한 발걸음으로 타박타박 발소리를 내며 그네로 달려갔다.


안방 문틀에 매어놓은 그네는 재활센터에서 보았던 그네를 따라 만든 것이었다.


요가할 때 쓰이는 해먹처럼 커다랗고 탄력 있는 천을 매달아 아이는 그 안에 폭 파묻혀 슈퍼맨처럼 날기도 했고 온몸을 말아 넣고 뱅글뱅글 꼬았다가 푸르륵 풀리며 도는 것도 즐겼다.


그러다 이따금씩은 문틀에 부딪혀 아픈 곳을 싸매고 끙끙 거리기도 했다. 나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럴 땐 아프다고 해야지.  어디가 아파? 여기가 아파? 따라 해 봐  '아파'"


아이는 내가 하는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 듯 그저 아픈 부위를 손으로 싸매고 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돌처럼 굳어있었다. 


배가 고프면 내 손을 잡고 주방으로 갔다.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내 손을 잡고 그 물건이 있는 곳으로 던지듯 가리켰다.


"말을 해야지. 뭘 줄까?"


거듭된 말에도 아이는 그저 내 손을 끌어가기 바빴다. 난 끊임없이 말을 걸고 아이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내 손만 끌어간다.  그렇게 서로 간의 도돌이표 같은 순간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는 마법의 단어를 내뱉는다. 


"우에요(주세요)"




말아톤이라는 영화를 보면 엄마가 비 오는 날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비를 맞으며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라는 말을 연신 가르치는데 아이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왜 말을 못 하냐며 절규하듯 말한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생각 없이 보던 그 장면이 지금에 와서 이따금씩 떠오르는 건 이제 내가 그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이따금씩 아이가 내는 이상한 외계어소리와 허밍으로 부르는 노래들.


그 어눌한 발음들을 들을 때면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아이는 기분이 좋게 노래를 하다가도 갑자기 돌변하여 서럽게 울기도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자지러지게 웃기도 하고 이따금씩은 무서우리만치 조용하기도 하다.


순간순간 돌변하는 감정을 받아내기가 힘들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앉아 멍하니 앉아 아이를 본다.

눈이 마주친 아이는 언제 화를 내고 있었냐는 듯 나를 보고 배시시 웃는다. 나도 함께 배시시 웃어준다.

내 기분도 아이의 기분을 따라 롤러코스터를 탄다.




"불을 끄고 문 닫아야지 " 하면 등 스위치를 끄고 방문을 닫는다.

"밥 먹으러 나와" 하면 놀다가도 달려와 식탁에 앉는다.

"손부터 씻어야지." 하면 손을 씻고 수건에 물기도 탁탁 턴다음 다가온다. 

"손톱 자르자" 하면 다가와 내 품에 안겨 손을 탁 건네준다.

"학교 가야지" 하면 현관 앞에 둔 책가방을 메고 "나가자" 하면 신을 신고 기다린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다 알아듣는 듯 하지만 이따금씩 건네는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할 뿐 스스로 내게 말을 건네는 일은 없다. 


아이는 배가 고파도 울고 화가 나도 운다. 즐거울 때는 웃고 피곤하면 짜증을 낸다. 


그래 너도 답답하겠지. 너의 감정을 설명할 수 없는 너의 마음도 많이 힘들겠지.

소리를 지르고 분노를 표출하는 너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오늘도 노력해 본다. 


그러니 우리 함께 조금 더 노력하자. 그리고 언젠가는 얘기해 주렴.


그저 답답했노라고... 기뻤노라고 슬펐노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기다려주어 고맙다고... 그저 그것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언제나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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