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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Oct 31. 2024

어깨의 의미

존엄한 무게

여러분은 우리 몸의 어느 부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어느 곳 하나 중하지 않은 곳이 없겠다 하겠으나, 생명과 직결되는(의학적 생사가 판가름이 나는 기준-심장과 뇌) 부위, 생식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들은 빼고, 신체 어느 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나는 '어깨?'라고 말할 것이다.

끝에 물음표를 붙인 이유는 사실 '어깨-허리-무릎'이 세 곳이 3종 세트 같아서 허리도 중하고, 도가니도 중헌디 그중에 제일은 어깨이지 않을까 하는 본인도 의문인, 질문 같은 대답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뛰노는 모습을 (나무 그늘에 앉아서) 보고 있자니, 어후야, 나는 틈만 나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데, 저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게 바삐 움직인다.


숨을 헉헉대며 열심히 공을 쫓는 아이들.
하릴없이 우르르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아이들.
다람쥐마냥 이리저리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들.
다람쥐처럼 쉴 새 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아이들

잠깐 숨 고르며 쉴 법도한대 엉덩이가 솜털처럼 가벼운지 여기저기 잘도 날아다닌다.

왜일까. 생각하던 차에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우르르 교실로 들어간다.

'쉬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은, 나이 든 내가 생각하는 '쉬는 시간(rest time)'이 아닌, '(공부를 잠깐) 쉬고 (노는) 시간(play time)'인 것이다.


그래, 그 짧은 시간에 실컷 뛰어놀아야, 또 잘 앉아서 버틸 수 있지.


그렇게 땀 흘려 뛰어노는 아이들의 '쉬는 시간'이, 그 시절이 부럽고 그립다.

뛰어노는 '쉬는 시간'을 앉아서 바라보는 나의 '쉬는 시간'이 더 이상 같지 않다는 사실에 살짝 서글퍼진다.

서글픈 것은 비단 흘러간 시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의 쉬는 시간은.. 몸의 한 지체가 다른 지체를 주무르고 있거나 두드린다. 어릴 적 왜 어른들이 그렇게나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는지, 또 어깨를 주무르라고 하는지 이제 알게 된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온몸이 쑤시고, 아이고  곡소리와 함께 일어나고 앉는, 내 어깨를 짓누르는 중력하나 이겨내기 위해 기합을 짜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픈 것이다.(그렇다고 나이를 그렇게 많이 먹은 것도 아닙니다만,)


어깨가 뻐근하고 무겁다는 느낌은 육아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듯싶다.

내 몸이 다른 생명체를 안고 업고 안고 업고.

10 kg 쌀 포대는 낑낑대며 들어도 20 kg 가까운 아이는 곡소리를 내면서도 안아주는 걸 보면 아프다는 거 다 거짓말 같다는 생각도 든다. 모성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따스한 생명체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가 하나에서 셋이 되면서 찬란한 기쁨에 영광처럼 날아오른 듯했다가, 뒤따라오는 책임감의 무게에 도로 땅으로 고꾸라진 듯했다가.

살아있기에 매일, 이 양날의 검과 같은 기쁨과 고통이 어깨에 마주 내려앉는다.

나의 어깨는(어쩌면 우리 모두의 어깨는) 그렇게 삶의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양팔 저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다 큰 일을 잘 해결해 내고 한숨 돌리는 순간이면 스스로 어깨를 도닥이며 '잘했어, 애썼다, 나 자신'하며 셀프 칭찬을 하게 된다. 내가 나를 믿었고, 내 어깨가 잘 버텨주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어깨가 가장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다.


어깨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나의 개인적인 생각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한 언어 속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어깨를 나란히 하다:서로 비슷한 지위나 힘을 가지다
어깨가 올라가다:기분이 으쓱해지다
어깨가 처지다:기력을 잃거나 낙심하다
(출처:다음사전)


위에서 보는 것처럼 힘이나 지위, 그 사람 기분을 읽을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요즘 시쳇말로 쓰이는 어깨빵은 상대방의 어깨를 치는 행위인데 힘의 우위를 가늠하여 시비를 걸거나 공격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어깨가 사용되는 안 좋은 예이다.)



우리가 잘 아는 서양 명언 중에도 어깨의 사회적 지위를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 있다.


Stand on the shoulders of giants.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
이미지출처:https://www.gndaily.kr/news/articleView.html?idxno=36319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이 자신의 겸손함을 표현한 것이라지만(뉴턴이 이야기해서 더 유명해진 것이지, 원래 유명했던 말이라고 함), 사실 누군가의 성공은 순전한 자기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묵묵히 그 길을 먼저 간 선구자들의 어깨를 빌려 탄 덕분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그동안 나 역시 수고로이 자신의 상아탑을 이루어 낸 수많은 거인들의 어깨를 빌려 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부모님부터 시작하여 소중했던 친구들 선배들, 스승님들. 그 모든 어깨의 수고 덕분에 지금의 내가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지금은 감히 누가 나에게 친히 어깨를 내어줄까, 누가 좁디좁은 나의 세상에서 우물 안의 개구리를 벗어나게 해 줄 거인의 어깨가 되어줄까.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나는 브런치의 수많은 작가들을 통해, 그들의 어깨 위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고 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에 통달한 많은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조금 더,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게 된다.


마친가지로, 위태위태 수평을 맞추느라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나이지만,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 나의 어깨를 내어주어 미지의 세상을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잘 살아야 하고, 그래서 오늘 나의 어깨가 뻐근하고 무겁더라도 툭툭 치면서 '잘하고 있어, 수고했어' 할 수 있는 것 같다.



오늘도 누군가의 어깨가 되어주느라 애쓴  모든 구독자님들, 셀프 토닥 하시며, 평안한 하루를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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