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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구로그 Nov 13. 2024

pickle me.. .

나를 절여주세요.. .

Pour me some formalin

                                                                                                               - 에로틱 웜즈 익스히비션


    오랜만에 들어보는 참 오싹한 가사이다.

    이별을 이미 등에 지고 틈 사이에서 몸을 기대고 있는 나에게 상당히 맘에 드는 가사이기도하다.


    지금 상황에서 나에게 포르말린을 부어도 무엇이 달라지는가 고민을 해보면, 마땅히 그렇지 않음을 몸소 알고 있음에도, 내가 젖은 화학 약품 사이에서 스며지는 오싹한 상상을 하고는 한다. 시간이 흐르면 막연히 나아지겠거니, 생각하며 지내고 있지만 그것이 몸소 체감되는 나 자신이 굉장히 미워지는 요즘이다. 환한 웃음과 슬픈 눈물만 멈춰 두고 싶다. 내가 앞으로 향하는 것과 기억을 가만히 놔두고 싶은 것은 모순인 것일까? 


    이런 무기력함 속에서 억지로 해야 할 것들을 한다. 쌓여있는 과제와 평소와 같은 친구들과의 대화, 아무런 일도 없는 사람처럼 눈을 뜬 채로 눈을 감는다. 그러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내가 찾던 포르말린을 볼 수 있다. 괘씸하게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사진들을 자동으로 추천해 준다. 거슬리게도 평소에 일상처럼 이어왔던 연락을 계속하라며 그 사람의 프로필을 추천해 준다. 눈에 자꾸 밟힌다. 그럼에도 추천을 끄지 않는다. 내 일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나는 계속 느낄 것이다. 포르말린의 아찔한 냄새가 서서히 지워져 가듯이. 


    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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