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에 관하여.
인생은 기억에서 촉발되고, 그런 기억은 다양한 경험의 집합에서 피어납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봅시다.
어린 시절, 현재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닌 것을 보니 아마 7살~8살 무렵 즈음의 기억인가 봅니다. 정확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지만, 늦은 밤, 잠에서 깨어난 제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냐고 말하며 빨래를 개시던 어머니의 품에 안겨 운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린 저는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던 것일까요? 그때의 어머니는 얼마나 당황하셨을지, 저에게 있어서 지우고 싶은 기억 중 하나입니다.
이런 원초적인 공포가 아직도 강하게 비치는 것을 보면, 이후로 연장선에 선 제 인생은 죽음과 소멸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생에 잘못이 크다 보니 이제는 이런 허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억 하나 잊지 못해 속에서 길길이 뛰는 모습이 가끔 비굴해 보이기도 합니다.
제 뇌가 오직 저만을 위해서 행동하지 않음을 이때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뇌에 쑤셔 넣기 위한 과정이 자발적일 때를 제외하고, 일부러 잊어버리고자 눈을 감고 피하는데도 기억이 뇌 한구석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으면 저는 굉장한 나약함을 느낍니다.
이렇듯, 기억이 그저 착한 존재임은 아닌가 봅니다. 물론 이를 두고 뇌의 능력을 탓하기란 힘든 것은 압니다. 기억하기에 앞으로 나아가고 때로는 과감하게 뒤돌아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냥 쳐다보기도, 다가가기도 힘든 타오르는 불꽃 같은 것, 저에게 기억은 이런 이미지를 취하고 있습니다.
기억이란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는 기폭제이자 정신을 끌어내리는 저해제, 이런 이중적인 태도 사이에서 저는 매일 갈등하고는 합니다. 과거를 원동력 삼아 앞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지만, 이에 중독되어 뒷걸음질하는 사람들 사이에 아쉽게도 제가 어느새 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