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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Jul 18.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89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53  


        

두물개 이야기   

  

바리공주 이수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경의·중앙선 복잡함을 피하려 조금 서두르는 바람에 뒷부분 시간이 남아서 일정을 다시 짠다. 이리저리 살피다 응봉역에서 내려 강변 따라 걸으면 옥수역이 나오지 않을까, 스마트폰 지도만으로 짐작하고 쑥 내린다. 지도를 보며 길을 찾을 때 습관상 가장 빠른 경로 중심으로 하기 쉽다. 실은 그러느라 원하지 않는 이상한 길로 들어서거나, 엉뚱하게 더 돌아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양평에서도 여기서도 그런 실패를 거듭한다.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놓친” 풍경에 대한 근거 없는 상실감이 슬그머니 똬리 틀기에 제법 짐짐하기도 하다.   

   

생각했던 길이 없는 탓에 표시판 따라 응봉산으로 접어든다. 응봉(鷹峰)은 매 봉우리다. 조선 초기 임금들이 매사냥하던 숲이라는 말이다. 높지 않은(95.4m) 야산이지만 주위 풍경을 둘러보기 좋아 지배층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이쪽 풍경을 건너편에서 보는 재미도 커서 세조 때 권신 한명회가 압구정을 지었을 정도다. 겸재 정선도 그림 소재로 삼았으니 오랫동안 뜨르르한 이름을 유지한 듯하다. 과연 그렇다. 동쪽 기슭을 따라 오르면서 보니 서울 동남쪽을 중심으로 멀리 관악도 볼 수 있고 정상에 오르면 조금이긴 하지만 북한산 마루까지도 볼 수 있다. 높이에 비해 넓게 보여 좋다. 

  

두물개 풍경


나지막한 산이라 금방 벗어나 자동차 굉음이 우렁찬 뚝섬로·강변북로 앞에 선다. 무섭게 달리는 자동차 행렬을 힐금거리며 좁다란 길을 따라가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지하도 입구와 마주한다. 아무런 안내 문구가 없다. 이 경우 마을 사람들만 알고 한강 둔치로 드나드는 통로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들어간다. 빙고. 곧바로 제법 넓은 공원과 자전거길이 나온다. 서늘한 바람결에 물 내음이 실려와 대뜸 기분이 깊게 바뀐다. 숲속에 있을 때 사람-나무라는 내 본성이 물기운 안에 있을 때 사람-물이 되는 일은 달라짐이 아니라 깊어짐이다. 그러니까 나는 갈 길을 가는 중임이 틀림없다.   

   

잠시 강바람을 쐬며 앉았다가 걷는데 문득 눈길이 한 곳에 사로잡힌다. 사라진 섬 저자도 이야기가 기록된 안내문이다. 섬의 유래와 변화 과정을 소상하게 전해준다. 마지막으로 사라지게 한 사건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건설이다. 그 섬 흙을 모조리 퍼다 써버렸기 때문이란 얘기다. 독재자 박정희가 정치자금을 만들기 위해 강남 허허벌판에 부동산 투기 바람을 일으킨 결과가 이런 식으로도 나타난 것이다. 일제 특권층 부역자 발길이 닿지 않은 데가 어디 있겠나만 이런 곳에서 마주친 썩은 냄새는 까닭 모르고 느닷없이 맞은 귀싸대기와 비슷한 불쾌감을 일으킨다. 참 징글징글하다.   


저자도 이야기

   

걸음을 멈추고 망연히 서서 강바닥을 바라보다가 아까 읽은 글 가운데 한강과 중랑천이 만난다고 해서 이 지역을 옛사람들이 ‘두물개’라 불렀다는 내용을 떠올린다. 이 직접적이며 소박한 순우리말을 벼슬아치들은 음만 그럴싸하게 따서 생뚱맞게 두모포(豆毛浦)라 표기했다. 그 부역 행위는 두모교라는 다리 이름으로 살아남아 오늘까지 전해지지만 두물개는 사라져 버렸다. 조선시대야 한글을 공식 용어로 쓰지 않아서 그랬다 치고 대한민국에서는 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까? 두물개란 이름은 과연 되살아날 수 있을까? 모두 답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을 뿐이다. 

     

그뿐인데 하필 이런 데 눈길을 두어야 하는 까닭도 모르지 않는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까닭까지도 모두 안다. 그래서 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대단히 심각한 상황인데 그대로 가는 걸 보고 중독이라 한다. 중독이란 온갖 갈등과 불편과 고통을 그때그때 가려준다. 그 행복을 한껏 즐기면 끝이다. 제국의 강령이다. 제국이 인용한 carpe diem은 똑같은 말을 신 아닌 악마의 경전에서 뽑았다. 물론 그 악마는 신의 그림자다. 나는 두물개를 떠난다. 후텁지근하고 후미진 이상한 계단을 올라 지하철역으로 간다. 그 길목에서 홀연 두물머리 해월 신사의 곡두와 맞닥뜨린다.


다시 일어나는 듯한 저자도(닥낭섬). 건너편 오른쪽에 현대아파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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