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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Dec 17. 2024

62:8

 

하루 동안 여성이 웃는 횟수는 평균 62번이고 남성은 8번이라고 한다. 차이가 나도 많이 난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대뜸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리송하다.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이렇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주체가 여성이기 때문 아닐까? 이런 추론은 내 육아 경험에서 나왔다. 젖 먹이는 일 빼고 모든 육아 노동을 했던 1년 남짓한 시간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다.  

    

많은 깨달음도 있었다. 예컨대, “더울 땐 아기보다 덥게 입고, 추울 땐 아기보다 춥게 입는다.” 그래야 아기가 더워하는지 추워하는지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섬세한 양육자라도 아기 아닌 제 중심으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기 마련이라 이런 경계를 세웠다. 물론 내가 똑똑해 머릿속에서 창발한 통찰이 아니다. 나보다 먼저 양육자였던 인생 선배를 통해 넌지시 전해졌다, 어느 봄날 지하철에서.   

   

바람 불어 아기에게 도타운 옷을 입혀 병원 가던 길이었다. 전동열차 안으로 들어갔는데 조금 뒤부터 아기가 칭얼거리더니 끝내 큰 소리로 울어댄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달랬으나 막무가내다. 잠시 후 어떤 초로 여성 한 분이 다가오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아기가 더워서 그래요. 겉옷을 벗겨 주세요.” 세상에나, 아기가 곧바로 울음을 멈춘다! 그날 밤 내 육아 메모장에 쓴 글이 앞에 든 예문이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엄마는 아기 앞에서 뭐든 함부로 할 수 없다. 특히 분노를 쏟아내거나 슬픈 표정을 짓는 일은 차마 할 수 없다. 배우자와 싸운 직후라도, 친한 벗이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라도 아기 앞에서는 웃어야 한다. 엄마가 표하는 그 분노를, 그 슬픔을 아기는 감당할 수 없다. 상처로 심어져서 마음 병으로 싹트고 자라난다. 62번 아니라 620번이라도 엄마는 웃어야 한다. 아니! 기꺼이 웃는다.    

 

내가 딸아이를 키우는 동안 그렇게 많이 웃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무뚝뚝한 사람으로 남았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웃음이 인간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뭐 그런 이야기를 떠나 언제 웃고, 웃으면 어떤지를 아는 한 더없이 웃는 인생이 더없이 즐겁지 않겠나. 돌아보면 나는 웃음보다 울음에 바투 선 삶을 살아왔다. 70줄에 들어선 오늘이라도 균형 좀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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