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호른을 보기 위해 스위스 체르마트로 가는 여행객들은, 그 중 특히 며칠 묵을 일정으로 가는 사람들은 으레 황금 호른을 기대한다.
새벽에 빛을 받아 불타는 황금으로 산봉우리가 덮힌 황금 호른.
마테호른을 보러 간다면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장관 중 하나라고 한다. 물론 나는 황금호른을 영접(?)할 기회는 없었다.
황금 색으로 불타는 마테호른. 그것은 분명 스위스 체르마트에 있다.
그런데 그 황금은 그린델발트에도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자부한다. 왜냐하면 황금 아이거에 대해 글을 남기거나 사진을 남긴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린델발트에는 ‘황금아이거’가 있으니 여행하는 사람들은 놓치지 말기를 바라며 몇 자 남긴다.
황금 아이거는 느지막한 저녁 노을이 질 무렵,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그린델발트로 산악열차를 타고 내려오다보면 영접할 수 있다. 멋진 황금 아이거 사진을 찍겠다고 산악열차에서 내릴 수는 없음을 체크하자. 나의 경우에는 마지막 열차를 타고 내려오다 본 것이니만치 중간에 내린다면 영락없이 그린델발트 숙소까지 어둠을 헤치고 걸어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라켄 첫 날.
새벽에 취리히 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숙소 체크인, 융프라우 요흐, 뮤렌, 라우터 브루넨까지 달린 나는 숙소로 돌아와야 하니 다시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가서 그린델발트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라우터 브루넨에서는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가든 아니면 인터라켄 쪽으로 가든 결국 한 바퀴 돌아 반대편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가든 똑같다.
그렇게 늦게 움직이다 보니 모든 기차가 거의 마지막 열차다.
거의 사람들이 타지 않은 산악열차를 혼자서 전세내고 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고, 옆 창 뿐만 아니라 위쪽에도 창이 달린 관계로 뷰를 감상하기 좋은 열차다. 그리고 타면 탈 수록 본전을 뽑는 느낌이 좋다. 워낙 기차표가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차 내부도 깔끔하다. 정확한 시간으로 유명한 만큼이나 깔끔함으로도 유명한 스위스 같다.
다시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클라이네 샤이덱에서는 그린델발트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클라이네 샤이덱을 기점으로 양쪽으로 산악열차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 2호선 지하철처럼 환상 노선이 아니다. 난 급할 것이 없으니 갈아타든 바로 가든 그냥 발길 닿는대로 간다. 그게 여행이지 하면서.
융프라우 요흐만 왔다갔다 하는 산악열차. 그 날은 운행이 끝났지만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리며 쉬는 것 같다.
멀리 융프라우 요흐 방향으로 보이는 봉우리. 이름은 이제 기억이 안나지만 그냥 봐도 멋지단 말이 나온다. 저 옆 호텔에서 하루 자면 어떤 느낌일까.
저 멀리 내가 타고 왔던 기차는 또 다시 인터라켄으로 내려간다. 그 날의 마지막 기차였던 듯 하다.
뭔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싶어 같은 배경을 이리도 찍어보고 저리도 찍어보니 비슷비슷한 사진들뿐. 또 아이폰 파노라마 모드를 켜서 전체 풍광을 담아보려 애쓴다. 정말 내가 봐도 애쓴다.
그렇게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그린델발트 방향 막차를 타고 내려오면 9월 중순 기준으로 해가 뉘엿뉘엿지는 시간이 된다. 노을이 붉게 물드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되면 기차 밖으로 노을을 만드는 햇살이 반사돼 내 눈으로 들어오는 황금색 아이거가 눈에 들어온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황금호른을 안봐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황홀하다.
기차에서 뛰어내려 흔들리지 않고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 앞에 아무것도 없는 청정 사진을 찍고 싶은 유혹이 들지만 그럴 수는 없다. 어두운 밤길을 헤쳐 숙소까지 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렇게 그린델발트 역까지 와서 숙소 근처를 지나면 아이거 북벽뿐만 아니라 다른 봉우리들도 황금으로 빛났음을 알게된다.
불타는 황금 봉우리들. 그것이 또 스위스 산악지역을 여행하는 맛과 멋이 아닐까 싶다.
황금아이거 북벽을 보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점점 황금이 흐려진다. 마치 물에 황금이 시나브로 씻겨 나가는 것 처럼 말이다.
해가 떨어졌어도 아직 마을은 밝다. 저녁이 되면 하루의 마감이 아니라 또 다른 생동감 있는 시간이 기다린다.
황금 아이거 북벽과 하나둘씩 불켜지는 동네 어귀를 보면서 나의 인터라켄 하루는 마무리 된다.
스위스? 그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