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방송환경 속에서 나를 바로 잡는 법
“안녕하세요 베이스볼 투나잇 김선신입니다”
11년간 진행한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의 메인 MC. 10년 동안 수십 명의 스태프가 바뀌고 8-9명의 메인 PD가 콜을 외쳤고 다양한 촬영세트들이 철수하고 만들어지길 반복했다. 딱 30세까지만 아나운서를 하고 그만 둘 생각이었던 필자는, 어느새 5세 아이를 둔 워킹맘으로 방송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화면이 실제보다 너무 뚱뚱하게 나오는 건 아닐까?’ ‘방송에서 실수하면 어떡하지?” ‘올해에도 내가 메인 MC를 맡을 수 있을까?’ ‘후배들에게 자리를 빼앗기면 어떡하지?’ 성난 파도들처럼 감정 기복이 요동쳤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거쳐, 30대 후반이 되니 비로소 파도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야구가 밤에 끝나다 보니 하이라이트 방송을 마치고 귀가하면 보통 밤 11시가 넘는다. 낮과 밤이 바뀐 삶을 살아온 지도 10년째. 불규칙한 스케줄 덕에 친구들과 제대로 된 모임을 갖기도 힘들다. 진한 화장과 높은 하이힐, 44 사이즈 방송 의상을 매일같이 입어야 하는 불편함, on-air 빨간 불이 켜지고 나면 혹시라도 방송사고나 말실수를 할까 긴장감에 두통이 밀려든다. 물론 이 세상에 힘들지 아니한 직업이 어디 있겠냐만은 방송일은 분명 내적인 에너지 소모가 큰 직업임은 확실한 것 같다.
월급을 안 받아도 좋으니 그저 방송만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때가 있었다.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저 내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게 신기해서 하루하루가 행복했었다. 하지만 생방중에 난 방송사고로 선배PD에게 욕설을 듣기도 하고, 취재 현장에 나가서 기자들에게 무례한 취급을 받기도 하고, 후배 아나운서에게 내가 하기로 낙점됐던 프로그램을 넘겨줘야 하기도 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온갖 악플들을 받아낼때면, 그저 ‘방송만 하게 해 달라’ 던 나의 초심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없어진지 오래다.자신감과 자존감은 겉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했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분노감이 차올라 모든 걸 포기하고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들이 찾아올 때, 다년간 내가 시도했던 방법 중 가장 효과가 좋았던 건 ‘마음 되돌아보기’이다. 무수히 많은 화살로부터 상처 난 내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다. 보통은 상처가 나면 통증에만 집중하고 빨리 치료를 하려고 든다. 하지만 나는 마치 수술 장갑을 끼고 메스를 든 의사처럼 상처의 속살을 끄집어내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비롯된 건인지 정확하게 진단하려 했다.
10년 동안 내 마음을 가장 힘들게 했던 상처는 ‘나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내년에는 이 일을 하지 못하고 잘리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어 해부했더니 오히려 방송을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다 보니 그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의 상처를 두려워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헤어짐의 상처가 두려워 자신의 마음을 꼭꼭 숨긴 채 사랑한다고 표현조차 하지 않은 연인들과 다를 게 뭐가 있으랴.
오늘도 on-air 빨간불이 켜진다.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고 얼굴이 살짝 상기된다. 후회 없이 방송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니 등줄기에서 아드레날린이 샘솟는다. 20대 내 모든 걸 내려놓을 정도로 온 맘을 다해 선택했던 방송. 내가 살아있고, 나의 존재 가치를 더 빛나게 해주는 방송. 그 끝이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이별이 두렵지 않다. 오늘도 나는 온 맘 다해 내 마음을 전한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베이스볼 투나잇 김선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