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의 편지
아이가 수업시간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왔다고 보여준다 한 장은 아빠에게 또 다른 한 장은 엄마에게 썼다 그걸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다 나는 키운정이 낳은 정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왜냐하면 앞선 화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나는 친엄마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여섯 살의 끝 무렵까진 엄마와 함께였지만 지금은 아빠와 단둘이 살게 된 지 3년 차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속에 엄마가 그리운가 보다 유치하게도 아이에게 엄마를 주지 못한 죄책감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엄마의 존재가 열심히 공주를 돌보고, 일하고, 생활하는, 아빠와 동급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를 서운함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답장이 왔는지 어쩐 지는 모르겠다
"엄마 못 본 지 2년 넘은 거 같은데 얼굴이 기억이 나요?"
"네 기억나요 사진도 있잖아요."
나와는 다르게 엄마에 대한 애착이 잘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얼굴을 못 보고 자신을 책임져 주지 않는 엄마에게도 그런 애착이 생긴다는 게 참 신기할 따름이다 나도 만약 다른 집 아이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살았다면 엄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을까?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들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나는 어른이다 당황한 척할 수 없다 아이의 말이 나에게 상처 같을지라도 그건 아이에게는 당연한 이야기니까 아빠에겐 안 좋은 엄마였어도 아이에겐 세상 최고의 엄마이니까
"혹시 엄마 만나게 되면 공주 보러 오라고 이야기할게요, 공주도 종종 엄마한테 문자 보내서 안부 전하고 이렇게 편지도 써서 보내고."
'쓰면서 아빠한테도 보내주면 고맙고.'
덧붙인 내 말에 아이는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길다 아이는 잠들었고 내 안의 불안이가 날뛰기 시작했다 월초라 바쁜데 몸은 힘들어 죽겠다고 자라는데 정신만은 잠들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뒤척이게 만들었다 시간이 약이다 잊어먹고 지내려고 하여도 종종 튀어나오는 이런 상황이 익숙해질 수가 없다
이혼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시간도 제법 흘렀다 이 정도 지났으면 그래도 얼룩 위에 무엇인가 덧댄 것처럼 희미해질 만도 하건만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종종 기억 속에서 솟아올라 섞이지 못하고 둥실둥실 떠다닌다
내일은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을 정도로 피곤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