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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Jul 18. 2024

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268)

아빠 이제 공주님은 조금 부끄러워요(+이행명령 1차 심문기일)

보통은 면접교섭을 안 시켜줘서 이행명령 신청을 하는데 저희는 반대여서 그런지 판사님이 처음에 실수를 좀 하셨어요 제가 아이를 키우는데 전처를 보고 왜 아이 안보여주냐고 발언을 하셔서 정정해 드리고 시작했네요 어려운 길을 괜히 가는 거 같은 느낌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이가 조용히 나를 부른다 또 오늘은 무슨 핑계를 대고 아빠 옆으로 오려고 하는지 들어보려고 그랬는데 의외의 말이 들려온다



"아빠 밖에서는 공주님이라고 안 불러 주면 좋겠어요."


"아니! 공주를 공주라고 부르지 못하면 뭐라고 불러요?"


"OO아라고 불러주세요 이제 공주님은 조금 부끄러워요."



나름 애정이 가득한 애칭 중 하나였는데 점점 커가는 아이에겐 부담스럽나 보다 내 눈치를 살피던 아이가 말을 잇는다



"집에서는 그렇게 불러도 돼요 밖에서만."


"알겠어 공주가 쑥스럽다는데 그렇게 해줘야지."


타자연습



이미 입에 붙어버린 공주가 나는 왠지 그리워질 것 같다


2학년인데 벌써 공주라고 불려지는 게 쑥스럽다니 온 세상의 딸랑구들은 나이가 들어도 아빠들의 공주님 일 텐데 말이다 그래도 아이가 싫다고 하면 하지 말아야지


이불을 가슴까지 올려주곤 방에 불을 꺼주고 밖으로 나왔다 뭐랄까 순진무구한 어린이 같은 모습에 또 다른 어른스러운 모습이 툭 튀어나오면 나도 모르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언제나 부족하게 돌봐준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이는 나도 모르는 사이게 쑥쑥 큰다 같이 붙어있는 시간이 많은데도 아빠가 눈치채지 못하게 크는 거 같다


공주에서 벗어난 아이는 이제 무엇이 될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강아지였는데 강아지에서도 탈피할까? 어른스럽게 '할아버지 할머니, 이제 강아지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라고 할까?


되려 아이가 저렇게 어른스러워지니 아빠가 어리광쟁이인 것 같은 기분이다


감정이란 너무 빨리 성숙해서도 안되고 설 익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아이의 감정도 천천히 잘 익어갔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나의 상황과 비교하기엔 환경도 시간도 모두 다르기에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지 아이가 덜 상처받고 행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하는 게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해줘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아이는 그냥 쑥스러워 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빠는 생각이 많아진다




연극놀이



이행 명령의 첫 심문기일을 지나갔다, 법원의 소법정에서 엄마라는 사람이 판사에게 하는 말이 아이를 보면 아이의 아빠가 생각나서 나쁜 짓을 해버릴 거 같다고 안 만난다고 했다, 자기가 정신적으로 안 좋은 상태라고 진단서를 제출했다


판사가 물어본다



"지금 이혼한 지 얼마나 되었죠?"


"소송 중에 별거하였고, 작년 10월에 이혼이 완료되었으니 서로 얼굴 안 보고 산지는 2년이 넘은 상태입니다."


"2년이나 지났는데 피신청인, 아직도 그런 게 맞습니까?"


"네."



보통 자기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스스로를 정신이 이상하다고 말하던가, 법원까진 운전 잘만하고 왔을 텐데



"아이가 엄마를 찾나요?"


"이혼 소송 중에는 찾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럼 일단은 가사 조사를 진행해 보고 그 뒤에 다시 한번 일정을 잡아보도록 하지요."



첫 심문 기일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나 싶었다 서로 더 말할 것도 없어 먼저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거는데 전처가 창문을 두드린다 문을 내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살짝 내리니 한다는 말이



"애 핑계로 돈 뜯어낼 생각하지 마."



였다, 어이없고 황당한 말에 한마디 쏟아내려다 그냥 창문을 올리고 나왔다 법원 앞에 차가 좀 막히는데 차 뒤로 따라와 문을 두드린다 라디오를 켜고 소리를 높이고 전처의 목소리를 안 들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를 위해 면접 교섭 똑바로 하라는 이야기가 저 사람한테는 전 남편의 돈 뜯어내려는 수작질이다 뒤 따라 나온 그녀의 엄마가 그녀에게 뭐라고 귀에 속닥대는지 소름이 돋는다 아직도 엄마의 치맛폭에 쌓여 뭐가 옳고 그른지 구분을 못하고 있다


더 얽히지 않아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할 게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쌓여서 인지 눈이 자꾸 감겼다 인간에 대한 혐오가 쌓이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은데 이런 경험들은 사람을 불신하게 만든다


한숨 눈을 붙이고 일어나 전처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보던지 안 보던지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혼이 완료되었어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으니 부모로서 책임을 지라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면 다시 한번 본인을 돌아보고 당신과 당신 부모 사이를 생각해 보면서 아이에 대한 책임을 다 해라."



아이를 해코지한다는 말에 과연 내가 아이의 면접교섭이 다시 진행되더라도 보내야 할지 너무 걱정이 된다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었구나 그동안 그 본성을 숨기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참 놀라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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