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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Jul 26. 2024

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270)

OO 씨 누구나 다 우울증이 있어요



법원에 와서 여전히 우울하다는 OO 씨,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살이 많이 찌셨더라고요 그 모습에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살이 쪽 빠져서 혹여 괜한 마음이 들까 걱정했었는데 머리도 새로 하시고, 메이커 운동화는 참 비싼 거던데 유치하지만 그런 걸로 나는 당신이 그동안 어찌 살았는지 살펴보게 되네요


며칠 전 아이에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건강하라고 했던 말과는 다르게 판사 앞에서는 아이에게 해코지 할 것 같다고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자기 스스로 정신이 이상하다고 우울증 증상이 있다고 아이를 면접교섭할 능력이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시던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가 열 달을 배 아파 낳은 딸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엄마가 어디 있을 것이며 2년을 넘는 시간 동안 일도 하지 않고 부모 아래에서 등 따습고 배부르게 지내 그렇게 살에 윤기도 흐르고 통통해지고 좋은 옷과 신발도 가지고 누릴 것 누리고 사시는 와중에도 자기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어필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OO 씨 우울증 없는 사람이 어디있나요 당신처럼 집에서 노는 것도 아니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조금씩은 우울증이 있을 거예요, 쥐꼬리 만한 월급 받으러 출근하는 사람들도, 오늘 시험 보는 학생들도, 은퇴하고 소일거리 하시는 어르신들도, 다 각자 나름의 우울을 안고 살아가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당신과 다른 점은 그걸 스스로 극복하려고 한다는 거겠죠, 각자 나름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게 가족이든 아니든 제 몫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죠


내가 만약 다 큰 성인인데도 2년을 넘게 일을 안 해도 나를 책임져 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나는 엄청 좋았을 거 같아요, 직장 상사의 갈굼이 뭐죠? 나는 회사에 갈 필요가 없는데, 내가 전기세 가스비 낼 필요도 없고, 배고프면 부모님이 사두신 냉장고에 있는 먹을 것들 꺼내 먹으면 되고, 아이도 내가 키우는 것도 아닌데요 뭘 


우울증이 있었더라도 그런 생활이면 금방 없어질 거란 생각을 합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 말대로 여전히 우울하다면 그건 당신 스스로 아무것도 하는 게 없기 때문이겠죠, 지금 상황이 만족스러워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스스로 자존감을 채울 방법도 없고 그런 게 아닐까요? 요즘은 어떤가요? 아직도 남 탓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아니면 그냥 거기에서 보여줬던 모습은 속임수이고 잘 지내고 있나요?


어떤 모습이 진실이든지 간에 책임에 대한 회피는 그만해 줬으면 좋겠네요 자기 인생도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고 아이에 대한 책임은 부모로서 당연한 것이고 그게 남 탓을 한다고 자기 책임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처럼 자기 눈을 가린다고 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언젠가 이야기했던 적이 있죠? 죽기 전에 뭐가 떠오르겠냐고 어제 못 먹은 밥이 생각날지 아니면 책임도 지지 않고 도망쳤던 아이가 생각날지 아직 먼 훗날 같지요?? 그럼 계속 그렇게 살면 됩니다 


OO 씨가 꼭 건강히 기억력 좋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도 합니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 이 모든 것들을 잊지 못하고 가지고 살아가길 바라겠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당신의 오점 전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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