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에게 쓰는 다섯 번째 편지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나의 딸, 여름휴가 때 너무 잘 놀았는지 까맣게 타버린 네 모습을 볼 때마다 흠칫 놀라지만 그래도 올여름은 엄마가 없어도 잘 놀았구나 싶어 아빠는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간 아빠가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일에서도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정신없이 돌아보면 너를 그냥 놔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어 아침 일찍 일어나 스스로 옷도 갈아입고 씻고 대충 차려놓은 아침도 먹고 가방도 챙기고 아빠 출근할 때 같이 손잡고 나가는 게 당연한 건 아닌데 당연하듯 아빠 손을 잡는 게 미안하고 그리고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아빠가 능력이 부족해서 쥐꼬리 만한 월급으로 너를 먹여 살린다, 네 엄마 말처럼 돈을 더 버는 직장으로 가던지 그래야 할 텐데 기회가 없는 건지 능력이 없는 건지 아니면 둘 다 없는 건지 그래도 아빠가 자신 있는 건 꾸준히 하는 거니까 부족한 부분은 그렇게 메꿔서 공주가 부족한 부분을 느끼지 않게 노력할게
더위가 한풀 꺾였다 새벽에 자는 너를 두고 복잡한 머리를 좀 식히려고 밖으로 나와 아파트 단지를 하염없이 걸었다 어차피 답이 없는데 답을 구하려는 아빠도 참 답답한데 그렇게라도 해야 아빠가 좀 살 것 같았어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복잡한 생각은 다시 털어 버리고 출근을 했었지
공주 아빠가 세상을 다 살아본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칭얼대고, 한숨 쉬고, 투닥거려도, 결국 옆에서 남아 힘든 시간을 같이 버텨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간의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이야
원동력이 무슨 뜻이냐면 무엇인가 해야 할 때 힘을 주는 것을 말하는 거야 아빠에겐 공주가 원동력인 거지 하지만 네가 살아가면서 아빠를 원동력을 삼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의 원동력은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이었으면 좋겠어
아직 어리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인데 다 못해줘서 미안해 주말에 많이 놀아줘야 하는데 요즘 피곤하다고 낮잠 많이 자서 그것도 미안해 그래도 아빠가 공주 많이 사랑하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빠는 네가 힘들다고 아빠가 힘들다고 떨어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공주도 걱정 많이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아빠한테 다 이야기해
어.. 너무 비싸지 않으면 다 해줄게 ㅋㅋ
2학년 2학기 시작했는데 힘들어도 잘해줘서 고맙고 남은 3개월의 시간도 우리 같이 손잡고 잘 견뎌보자!
우리 공주 사랑하고 참 미안해
2024년 8월 28일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