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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항 Jul 10. 2022

슬램덩크(이노우에 다케히코)-스포 있음

"슬램덩크로 시작되어 골밑슛으로 마무리된, 강백호의 청춘의 한토막"

 

전설의 명작이라 뭐... 줄거리는 위의 한 줄로 요약될 것 같습니다.

흔하디 흔한 성장형 소년 만화의 전형 같지만, 저에게는 인생 책입니다.



“같은 2점이다.”


누구의 대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저에게 최고의 명대사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것입니다.

슬램덩크를 내리꽂은 북산의 선수(서태웅이었던으로 기억합니다만...) 바로 뒤에 골밑 슛을 넣은 상대팀 선수의 대사죠. 


제게 슬램덩크가 인생 책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연습해도, 아무나 해낼 수 없는 슬램덩크를 단숨에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강백호지만,

마지막 경기 노마크 찬스 때 그가 선택한 것은 오랜 연습을 통해 이뤄낸, 전혀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골밑슛이었습니다.

똑같은 2점... 하지만 강백호는 이미 농구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어버렸기에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닌, 진심이 담긴 선택을 한 거죠.


제가 보기에 슬램덩크가 추구하는 궁극의 해답은 신준섭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 500회의 슛 연습을 매일, 수년간 해낼 수 있는 대범함과 성실함.

신준섭의 슛은 3점짜리이므로, 슬램덩크를 확실하게 넘어서는 실질적인 무기입니다.

불꽃남자 정대만이 자신을 하얗게 불태워도,

서태웅과 윤대협이 최고의 대결을 했음에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해남은 이루어냈으니까요.

천재는 없지만 최강인 팀.


그리고 계속 서태웅, 윤대협의 화려함과 천재성만을 동경하던 강백호 역시

신준섭이 해왔던 노력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듯합니다.

재능은 거들뿐, 노력과 연습이 진짜 본질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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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인생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는 지금입니다.”



원작에서 강백호의 이름은 “사쿠라기 하나미치”입니다. 사쿠라기는 벚꽃 나무, 하나미치는 꽃길이니 화려한 벚꽃이 떨어지는 꽃길이 상상됩니다만, 사실 하나미치는 “활약하던 선수가 안타깝게 은퇴하는 시기”라는 의미라고 하더군요.


저 위에 있는, 제가 뽑은 두 번째 명대사는

마지막 상왕전에서 허리에 부상을 입은 강백호가 

선수 생명이 끝날 지도 모른다, 이 경기만이 전부가 아니다, 너에게는 미래가 있다.... 등등

모두가 만류함에도 불구, 무리하게 출전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바로 초원의 빛이며, 꽃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열정과 기쁨이 꿈처럼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서러워하지 않고 굳세게 남아서 버틸 테니 나는 지금을 선택하겠다....


이 선택의 젊은이의 치기 어린 마음인지,

굳세게 버틸 자신이 있는 강자의 각오인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이것은 미래에 강백호가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죠.

그러나 꼭 농구로 부활하지 않음 어떻습니까. 

농구 선수가 아닌 강백호라도 이 순간은 너무나 아름다운 젊음일 테니까요.

농구를 하든, 안 하든 이 순간의 경험들은 그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기도 하고요.


강백호의 화려한 부활을 기다리며 2부를 기다린 지 거의 30년이 되어가네요.

그 사이 우리의 이노타케 작가님은 폐교 이벤트로 뒷 이야기를 풀어담으셨고요.

다행스럽게도 백호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더군요. 

다들 여전한 듯해서 굉장히 반가왔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2부가 나오지 않는 것이 슬램덩크다운 결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결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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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호가 청춘이었던 때, 저 역시 청춘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막 생기기 시작하고,

저 자신이 ‘주인공’ 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깨닫기는 했지만 순순히 인정하기는 싫어서 몸부림치며 노력해보기도 하고...

한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보고도 싶고.


그 당시에는 강백호가 재기하지 못할까 봐 안타깝기도 했고,

(이건 그의 이름 때문입니다. 하나미치의 의미 때문에...)

하지만 지금의 저는 그 모든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고요.


지금 나이의 제가 슬램덩크를 처음 봤다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는 않았겠죠.

소싯적을 슬램덩크와 함께 보냈다는 것에 팬으로서 기쁨이네요.

끝으로 사족을 달자면,

어디든 쇼핑몰 같은 데 가입할 때, 비번을 찾기 위한 질문으로,

저는 십 년 넘게 동일한 옵션을 선택해왔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바로 이 질문이요.

정답은... 누군지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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