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스드 서클 타입의 역사 판타지물입니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민감한 주제를 아주 초 민감한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작품인데요.
주인공은 존 올드만이라는 교수입니다. 십여 년 간 해오던 교수 생활을 청산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그의 말에, 동료 교수들이 그의 오두막에 모여 조촐한 송별회를 가집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아쉬워하는 동료들을 향해, 망설이던 그는 자신이 떠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인 즉 슨, 자신이 14,000년간 살아온 크로마뇽인이라는 것이죠.
도대체 왜 나이를 들지 않고 영생하는지 과학적인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수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십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그의 외모를 의아해하는 사람들을 피해 십 년마다 자신의 삶을 바꾸어왔다는 존 올드만.
동료들은 이게 농담인지 뭔지 혼돈스럽기만 합니다. 그래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 모임이니만큼, 그들은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라는 듯이 질문을 던집니다. 전문가들의 질문이니 당연히 허투루 대답할 수 없을만한 것들이죠.
그러나 존 올드만은 전문가의 식견으로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구체적이며 타당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도무지 틈이 보이 지를 않죠. 동료 교수들은 갈등합니다. ‘어, 이거 진짜 믿어야 하나???’ 그러다가 그는 어떤 말을 하게 됩니다. 바로 그가 한동안 석가모니의 제자로서 수행은 해왔다는 것인데요. 그 수행을 통해 많은 진리를 배웠으며, 몸을 가사 상태로 만들 수 있는 기술도 터득했다는 것을요. 여기까지는 뭐, 동료들도 그러려니 합니다.
그러다가 화제는 종교로 넘어가게 됩니다.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애매하게 대답하는 존. 결국 그는 자신이 성경 속에 등장하는 유명 인물이라는 것을 고백해버리고 맙니다. 자신의 행적은 그리 거창할 것이 없었지만, 역사 속에서 덧칠됨으로써 거창한 것이 되어버렸다고 말입니다.
자, 당연하게도 이제 동료들은 그가 성경 속 인물 중 누구였는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힌트는 세 가지.
첫째, 그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설파하기 위해 중동으로 간 것이다. 당연히 그는 대중들에게 뭔가 종교에 가까운 성격의 철학을 설파했으며, 대중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둘째, 그는 수행을 통해 가사 상태에 이르는 법을 터득했다. 그 결과 그는 대중들 앞에서 죽음을 가장할 수도 있었다.
셋째, 자신에게 열광하는 대중들에게 ‘나를 능가하는 존재(석가모니)가 있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존재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그의 아버지로 둔갑해버렸다.
동료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집니다. 그의 말에 빠져들어 종교의 근원에 대해 의심해보기 시작하는 이들도 있고, 제발 자신의 말이 거짓이라고 말해달라며 울부짖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찾아오는 것이 두려워 그동안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자신을 철저히 숨겨왔었다는 존.
결국 그는 자신의 말이 다 거짓이었다며 이런 소설을 써볼까 한다는 식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허탈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동료들.
그러나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영화는 결말부에 작은 반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오두막이라는 제한된 공간. 소수의 등장인물.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담담히 대사들로만 이루어지는 전개.
지루해야 마땅할 만한 설정들의 집합이지만, 오히려 영화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아... 그렇군요. 이 작품의 가치는 바로 이야기의 힘입니다.
‘예수가 알고 보니 석가모니의 제자였다. 성경은 사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힌두 신화가 섞여서 각색된 이야기이다.’
당연히 종교적인 논쟁과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스토리이지만, 신성모독을 의도한 영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인류 전체와 삶을 같이 해 온 크로마뇽인의 외로움. 우리가 듣고 상상해왔던 모든 것을 실제로 경험했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수도 없이 떠나보내야 했죠. 그러면서 존은 과연 어떠한 감정들을 느껴왔을까요.
........나는 당신네 인간은 믿지 못할 것들을 보아왔어. 오리온좌 너머에서 불에 타던 전함. 탠하우저 게이트 근처에서 어둠속에 반짝이는 C-빔도 보았지. 그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에서 사라져 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블레이드 러너”에서 로이가 한 마지막 대사죠. 왠지 모르게 존을 보면서 로이가 연상되어서 적어봤습니다.
워낙 유명해서 덧붙일 필요도 없는 영화지만, 저렇게나 여러 가지 일을 (간접적으로나마) 겪어온 로이와, 길어야 수십 년의 인생을 살아온 인간들 중 누가 더 인간적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대사입니다.
그만큼 큰 무게감을 가진 삶을 살아온 존은 꽤 담담합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광물도 그저 하나의 수집물에 지나지 않고, 고호의 그림도 친구의 선물일 뿐 경제적 가치는 따지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인물의 삶도 그에게는 그저 ‘별 것 아닌데 과장된 삶’일 뿐이죠. 우리가 추앙해온 그 모든 것들이, 그것을 겪어 온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할 뿐인 거죠.
..... 그리고 소중했던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배척을 받는 것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것도, 슬프지만 늘 일어나는 일상일 뿐입니다. 신으로 추앙받는 그이지만, 상실감과 슬픔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의 담담함은 체념에서 온 것일 테지요. 그라고 울부짖고 괴로워하고 몸부림친 시절이 없었겠습니까.
만 사천 년의 세월을 겪어왔다는 것은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어쩌면 ‘겪어왔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대함이라는 것은 말이죠.
이런 소재에 대해 종교적 이유로 거부감을 가지지 않으시는 분들께는 강추드립니다. 90분 정도밖에 안 되는 러닝 타임으로 이만큼 머리도 마음도 즐거워지는 영화는 드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