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에 환장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오컬트를 아주 좋아하고요.
반전에 한층 더 환장합니다.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는 제겐 꽤나 생소한 류의 영화였지만, 앞서 말씀드린 환장 3요소를 다 갖춘, 따라서 상당히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70년대 분위기를 잘 살린 파운드 푸티지 형식의 영화로, 나이트 아울이라는 토크쇼 MC인 잭 델로이가 겪는 할로윈날 벌어진 대환장 파티, 그리고 대환장 파티를 위한 빌드업이 주된 내용입니다.
잭 델로이는 겉보기엔 매우 재능 있고, 기본적으로 “나쁘지 않은~선량한”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사람입니다.
그냥 보통 사람 정도의 윤리관을 가졌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제법 잘 나가는 심야 토크쇼의 MC입니다만, 그러나 제법 수준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잭은 전설의 자니 카슨 쇼를 넘어서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가는 일의 결과가 늘 그렇듯이, 간발의 차이로 자니 카슨을 추격하던 잭은 점점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 결과 오히려 시청률 하락세를 맞이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잭의 “비흡연자 아내가 폐암에 걸려서 사망하는” 최악의 사태마저 벌어집니다.
사망 직전 항암 투병을 하던 잭의 아내가 토크쇼에 출연하게 되면서 시청률은 급등하지만, 자니 카슨을 따라잡기는 무리였습니다.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잠수를 타던 잭은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다시 복귀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할로윈, 악마를 스튜디오로 불러서 토크쇼를 진행합니다.
악마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악마에 빙의된 한 소녀인데요. 이 소녀는 악마를 신봉하던 사이비 종교단체의 단체 자살 및 살인의 아수라장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입니다. 현재 잭과 내연관계인 심리학자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고 있죠.
하지만 몇 시간짜리 토크쇼에 과연 등장할지 안할지 모르는 악마만 출연시킬 순 없겠죠.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유명한 심령술사와 가짜 오컬트 감별사를 자처하는 마술사를 함께 초청하여 진행합니다.
쇼는 처음부터 기괴하게 흘러갑니다.
심령술사와 마술사의 심령술을 둘러싼 진위 다툼, 생방송 중 갑작스럽게 피를 토하며 결국 엠블런스에서 사망한 심령술사,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일부 관계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잭은 기어코 소녀에게 빙의된 악마를 소환합니다.
그런데 이 악마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잭은 중간에 망설입니다.
이 쇼를 이대로 진행해도 되는 것인가?
왜냐하면 잭은 일단 ‘상식적인 보통’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드라마틱한 결과를 원하지만, 너무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겁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돌이킬 수 없이 흘러왔습니다.
시청률은 폭등하고, 이를 알아챈 방송국에서는 쇼를 더 농도 짙게 진행하기를 원합니다.
더욱이 메인 게스트인 악마가 쇼를 중단할 생각이 없습니다.
본인이 직접 나선 만큼, 그는 최선을 다해 최고의 쇼를 만들어주려고 하죠.
모두를 몰살시키면서요.
잭을 위해서...
네, 이건 모두 잭을 위한 토크쇼였습니다.
왜냐하면 잭은 지상 최고의 쇼를 위해 악마와 계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산 제물인 그의 아내를 희생시키면서요.
선량해 보이는 보통의 사람은 얼마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걸까요?
그가 시청률로 자니 카슨을 이겼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
잭은 실망했을지 모릅니다.
아내를 희생시키며 진행한 아내와의 토크쇼 역시 아슬아슬하게 자니 카슨 쇼를 이기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악마는 약속을 확실히 지켰습니다.
이건 뭐, 시청률 1위 정도가 아니라 인류 역사에 남을 만한 엄청난 이벤트를 마련해버렸죠.
잭이 원한 것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바친 아내 이상의 제물을 함께 가져가버렸습니다.
이 영화에서 악마가 누구인지는 다들 짐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청률에 목을 매어 해서는 안 될 선택까지 해버리는 잭, 그리고 방송국,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시청자...
해석은 갖가지지만, 모두 옳은 생각이겠죠.
영화는 크게 어렵거나 뒤틀지 않은 연출로, 자신이 선을 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악마와의 게임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마 입장에서 이 토크쇼는 철저하게 자신의 재미와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겠죠.
잭이 제발로 걸어와 자신의 아내를 제물로 바치면서 계약을 맺었으나, 악마는 얼마나 재미있었을까요?
궁금한 점은 만약 심령술사의 죽음을 알게 된 후 토크쇼를 멈췄다면, 과연 악마는 어떻게 했을까입니다.
정해진 파국이었겠지만, 악마와의 유혹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단도리하며 빠져나올 기회는 아예 없었던 걸까요?
예측이 될 것 같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전개에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