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혼술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의 어떤 하루

by 빛나는 우리

아들이랑 또 크게 한판 했다.

이 날만 그런 건 아니고 거의 매일 이 모양이다.

아들의 사춘기에 제정신이 아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우리 가족.

우리 부부뿐 아니라 친정 부모님까지 휘청이는 시간이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데...

앞으로 쭉 간다는데...

너 어떡할래...


이 엉망진창의 일상 속에서 우리 둘째가 자라고 있다.

오빠랑 터울이 커서 아직 내 눈엔 아가인 우리 둘째가 이 진흙탕 싸움을 매일 지켜보면서 자란다.

이 날은 우리 둘째 셔틀이 없는 학원에 걸어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날이었다.

데려다주고 2시간 후에 데리러 가야 하는 게 귀찮아서,

책을 하나 챙겨서 카페에서 기다렸다 데리고 올 참이었다.

둘째의 쉬지 않는 종알거림에 대꾸해주고 있지만 반쯤 혼은 나가 있는 상태.

아이를 학원에 넣고 카페로 들어가려다,

'아니다. 술을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아이를 데려다주는 길에 꼬치 굽는 연기가 진동을 하는 야끼도리 술집이 생각이 나서 혼자 조용히 들어가 보니, 이미 테이블이 2개나 차있다.

몇 명이냐고 묻길래 일단 2명이라고 하고,

제일 구석 다찌로 가서 앉았다.

구석자리가 있어서 너무 좋더라.

' 하이볼 한 잔과 꼬치 2개만 먹고 얼른 일어나야지' 했는데,

꼬치 5개가 기본이었다.

' 그럼 2개만 먼저 주시고 나머지 3개는 천천히 주세요.' 하고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 꼬치 5개를 못 먹을 것 같아서 연락했던 건데,

지금 생각해보니 혼자 충분히 먹을 수 있었는데 괜히 연락했다 싶다.

" 혼자 술집엘 갔어???? " 놀라는 남편에게 퇴근 후 여기로 와서 한잔만 하고 가라고 했더니,

천천히 마시고 있으라고 한다.

물론, 천천히 마셔지지 않는다.

하이볼 한 잔과 꼬치 2개 순삭 하고, 남은 꼬치도 다 달라고 해놓고 하이볼 한 잔 더 추가했다.


그 난리를 치고 큰 아이를 학원에 보내 놓고 나서,

올라오는 울분에 목 아래까지 울음이 가득 차 있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나질 않는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드라마나 책만 봐도 눈물이 수시로 흐르는데,

아이 때문에 속상해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도 눈물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속이 더 터질 것 같아서 술이 고팠다.

남편이 왔길래 오늘도 크게 한 판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제야 눈물이 난다.

다찌에 혼자 앉아서 꼬치가 나오는 동안 책 읽다가,

꼬치 열심히 먹고 술먹더니,

일행 오자마자 냅킨으로 눈물 닦는 미친 아줌마가 오늘 왔다 갔다고

술집 젊은 남자 사장님들이 신기했을 테다.

남편에게 이야기해봐도 결국 답은 내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 밖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달라지지가 않네.

아들놈도 이러고 나면 약간은? 후회라는 걸 하겠지만 달라지지 않는 거겠지.

( 설마 후회도 하지 않고 달라지려고도 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 )


둘째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인데 남편이 생맥주 한 잔을 더 시킨다.

그럼 당신 혼자 마시고 나오라고 내가 먼저 가겠다고 했더니,

자기는 술집에 혼자 못 있는다며 원샷하고 따라나선다.

술냄새 풍기며 우리 부부 열심히 달려가서 왜 늦게 왔냐고 타박하는 우리 둘째 고사리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뒤따라 들어온 첫째를 꼭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첫째는 날 안아주지 않는다.

" 엄마 아빠는 이래 놓고도 똑같잖아요 "라는 소리를 하더라.


그래... 달라지기 힘들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엄마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냥 오늘 하루는 술기운에 너랑 싸우지 않고 그냥 잠들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잠들어 버렸다.



22.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