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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호 Apr 20. 2023

핑크빛 허망함

따뜻했던 어느 봄날, 나는 투병 중이다

나는 직장생활 7년 차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왜 아픈 건지, 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 건지 알지 못한 채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고 생명을 연명하듯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일로 온 권태기인 줄 알았고 그다음에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상태로 살아간다고 생각했고 마지막에는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나는 이게 정상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진지하게 질병휴직을 생각해 보았다.


비 내리던 주말이 끝나고 화창한 어느 월요일이었다.

사람들은 출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그날의 나는 병원을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병원에서 준 검사지의 500여 개의 문장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꾹 참고 검사지의 한 문장 한 문장을 하나씩 읽고 답을 썼다. 나는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검사지의 문장은 시험도 아니면서 답을 모르겠는 것들로 가득했다. 어쩌면 나는 내 주위를 돌보느라 나를 가장 돌보지 못했나 보다. 나만의 정답인지 아닌지도 모를 시험 같은 검사가 끝나고 나는 그날도 사회인 가면을 장착한 채 회사로 향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나라는 사람을 숨기고 조직에 맞는 사람으로 사는 것만이 최선인가? 나는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 나의 이 아픔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이제는 이런 의문형을 떠올릴 힘도 없지만 그대로 괜찮은 척 현실이라는 무대 위로 올라가 본다.


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나에게 지금 휴직이 필요하다는 검사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나는 막상 휴직이 필요하다는 종합검사 결과지와 진단서를 작성해 주겠다는 담당 의사의 말에 오히려 아무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내심 안도를 한다거나 한 고비를 넘겼구나 하는 감정이 당연하게도 생길 거라 예상했지만 아무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그때의 나의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도대체 나는 어디까지 고장이 난 것일까.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사람들을 속일 수도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찾지 못한 상태인데 타인의 이해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미래의 내가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을 후회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미래의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질병휴직을 하겠다고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나와 하루종일 같이 보내는 사람들이 오히려 나의 안위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과 일하는 동안 내가 많이 버거워서 그러니 도와 달라고 소리치는 순간에도 나에게 감당하라고 한 사람들이 자기와 같이 극복해 보자는 쪽과 이대로 내가 없어지길 바라는 쪽 둘로 나뉘었단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이미 체력은 바닥이 난 지 오래였고 인내심에도 한계가 다 달아 온몸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 중이었다.

"나는 왜 책임감이라는 이유로 그들 곁을 지키려고 했던 걸까. 누구를 위해서 나를 갈아 넣고 있는가. 그리고 나의 자리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나는 왜 계속 이렇게 사는 가."


그렇게 2주간의 병가가 시작되었다. 그때의 나는 살아있는 시체였다. 공기를 인식하지 않고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할 인간으로서의 삶의 패턴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잠자는 시간으로 사용하였으며 당연하게 먹던 삼시 세끼의 식사량 또한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 와중에 먹은 것도 없는데 설사는 자주 일어났으며 초대하지 않은 위경련이 친히 방문해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해 주셨다.


나를 위한다는 이유로 전하는 수많은 말들 중에 복직하면 우리 볼 사이니 병가 중인 건 알지만 2~3일 정도 나와서 일을 해 달라는 말은 정말 무자비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남들은 안 겪는 모진 경험도 많이 겪고 그 속에서 나름 많이 달련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일은 꽤 쉬웠다.

"나를 이용하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로 도망치고 싶은 게 아닐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나의 진심을 자신의 편의와 이익 등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지친 게 아닐까. "


나의 몸은 아주 만신창이였다. 갈수록 악화되는 몸 상태에 나는 결국 핸드폰을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오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았으며 오는 카톡은 나의 상태가 괜찮을 때 확인 후 답장을 보냈다. 만신창이가 된 나의 몸이 나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철저하게 나를 위해 행동하였다. 이번 계기로 사람이 바닥을 치게 되면 내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남게 되는지 알게 된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게 되었다. 나를 아무 이유 없이 믿어주고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로 인해 자신이 받을 피해를 계산하느라 전전긍긍하며 나를 어떻게든 뽑아먹기 위해 안달 나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아프고 난 뒤 정신이 든 후 세상을 바라봤을 땐 만개한 핑크빛 벚꽃들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카톡 프로필에는 저마다 벚꽃놀이를 하고 찍은 사진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내 눈은 텅 비어있었고 인생이 덧없게 느껴졌다. 올해의 시작이 덧없는 허망함이라니. 마음속에 할머니가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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