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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호 Apr 25. 2023

버킷리스트

때늦은 올해 목표 세우기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 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나 소망을 세운다. 

나 또한 매해 연간목표를 세웠고 그간 많은 것을 이루기도 하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목표만 세워둔 채 그것을 방치하고 외면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나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지 않은 채 그 해에 내가 해야 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목표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휴직을 하고 나서 타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네가 그간 하고 싶었던 일을 맘껏 해”였다. 

그 이야기를 복기했을 때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뭐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래서 종이와 펜을 들고 카페로 갔다. 아이스 바닐라라테를 한 잔 시키고 찬찬히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뜻 떠오르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를 검색해 보았다. 대체로 비슷한 소망들도 있었고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소망들도 있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로 리스트를 채워보았다.


그중 하나로 ‘친한 친구 결혼식에서 축가 불러주기’가 있었다. 사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한 것 같다. 노래방을 가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 시간이 좋아서 함께하는 편이었다.


내 친구는 홀로 타국에서 직장 생활하며 지내는 친구이다. 그런 내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남은 여생을 타국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그 친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지호야, 너 내 결혼식에 축가 불러줄 수 있어? 부담스러우면 거절해도 돼. 

  근데 네가 축가를 불러준다면 나와 내 남편한테 아주 특별할 거야.”


나는 한 박자도 안 쉬고 바로 승낙했다.

"당연하지. 내가 불러줄게. 

  그런데 내가 축가를 부르면 네가 창피하지 않겠어? 부끄럽지 않겠어? 

  괜찮다면 나는 당연히 불러줄 거야. 노래 연습 많이 할게.”

그렇게 사랑하는 나의 친구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실력이 많이 부족했지만 친구의 결혼식에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을 했다.


대망의 결혼식 당일,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우울증 관련 약 중에 ‘필요시’에 먹는 약이 있는데 그 약은 갑자기 가슴이 떨리거나 불안하거나 할 때 복용한다. 하필이면 늘 가방에 있던 ‘필요시’에 먹는 약이 그날따라 없었다. 내심 약이 없음에 불안했지만 오늘 여러 사람들 앞에서 축가를 불러야 하다 보니 긴장이 됐나 보다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결혼식장에 도착하여 축가 리허설을 진행하였는데 설상가상으로 너무 긴장이 된 나머지 목소리까지 떨리게 시작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결혼식은 시작이 되었고 축가를 부르는 차례가 오기 전까지 나는 가사를 무한 반복하며 다시 한번 입에 붙이도록 하였다.


드디어 축가를 부르는 차례가 왔고 나와 내 친구의 인연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내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신 많은 하객들께 인사말씀을 드리고 축가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막상 축가를 시작하니 예상과 다르게 사람들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하나도 떨리지 않았고 가사도 틀리지 않고 무난히 잘 넘어갔다. 남 앞에서 자랑할 만한 노래 솜씨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친구의 결혼식에 진심으로 축하하며 축가를 부를 수 있고 무사히 끝 마칠 수 있음에 안도하였다. 그렇게 나의 휴직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완성하게 되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 여러 증상이 동반되는데 그중 하나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지는 것이다. 

나 또한 오랜 시간을 인생의 덧없음과 살아서 뭐 하나 하는 허망함, 미래의 기대치 저하, 이렇게 되어버린 나에 대한 자괴감 등으로 고통받았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직업과 삶이지만 왜 내가 고통스러운 지, 왜 내가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솔직히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고 현재도 찾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하나뿐인 소중한 나의 인생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가 힘들다고 미래가 암담하다고 해서 인생을 포기하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직업이기 때문에, 휴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거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줄곧 살고 싶었다. 이 병에 걸렸을 때도 걸리지 않았을 때도 이 직업으로 살 때도 아닐 때도 늘 나는 살고 싶었다. 이 고통을 이 생에서 끝내고 싶었다. 


지금도 이 병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힘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이미 그들은 충분히 힘내고 있고 열심히 버티고 있다. 타인이 힘들다고 해서 내 힘듦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후회하지 않을 만큼 힘내고 버텨보다 정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쉬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쉬어간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이 실패하거나 패배한 것은 아니다. 인생은 길고 긴 마라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생의 긴 여정을 살아내야 하고 걸어가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많이 다독여주자. 그동안 너무 수고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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