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방인의 한 달 고국 방문기
Chapter 4:나의 벗들
나의 30대를 보냈던 외국 글로벌 기업에 재직 당시, 나에겐 참으로 인상적인 관계사 상사 한분이 계셨다. 아마도 당연할 수 있는데 그 당시 나에게는 참으로 신선하고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분은 독일분이셨고, 내가 재직했던 회사는 그 당시 그룹차원에서 회사인수 및 매각활동을 활발히 진행을 하였다. 그분은 이쪽 분야를 담당한 상사였는데 그때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전 일 년 달력이 나오면 제일 먼저 휴가계획을 세우고 그 후에 회사 일정조율을 합니다. 아무리 중요한 회사 미팅이 있어도 휴가일정과 겹치면 과감히 회사일정을 조율한다고 하시면서 말씀하신다. 그 말이 지금도 인상적인 이유는 난 그런 삶을 추구하나 그 반대의 삶을 그때도 그리도 지금도 살 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종종걸음 걷듯이 헐떡헐떡 일하다가 시간 남으면 휴가를 급하게 보내고 쉬는 둥 마는 둥 시간을 허비하고 또 일을 매진하는 스스로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했다. 그렇기에 주변사람들에게 자주 연락도 못하고 고립된 삶을 오랫동안 살아왔다.
이렇게 외국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았으니 거기에 십 년 만에 고국을 왔으니 내가 연락을 하면 그들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라는 생각을 내심 하며 나의 오랜 벗들에게 연락하기가 민망했었다.
그럼에도 그중 한 친구와는 뜨문뜨문 연락을 한 덕에 그 친구의 주선아래 친구들과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친정엄마가 병원에 계신다는 이유로 내가 서울에 갈 수 없는 사정 또한 사려 깊게 이해해 준 그녀들은 나를 보러 손수 금쪽같은 토요일 하루 기차를 타고, 자가용으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손 수 운전을 하고 남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를 만나러 와 주었다.
우리는 보자마자 십 년의 부재가 무색할 정도로 바로 깔깔거리면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허물없이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또 술을 마시고, 아쉬운 마음에 기차예약시간은 늦추고, 집에서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어 전화가 오는데 아이를 달래가면 우리는 늦은 저녁시간에 그렇게 헤어졌다.
집에 오면서 마음 한켠이 따뜻한 온기로 꽉 채워지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참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컸던 거 같다. 그리고 그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내가 잘 못 살아왔음에도 그들은 나를 그대로 받아주고 나를 좋아해 주고 또 이렇게 무심하게 나타나도 괜찮으니 건강히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냈음 하는 바람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우린 50대 중반이 되면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기 자리를 찾아 엄마의 부재를 즐기는 나이가 되면 함께 여행을 꼭 가자고 약속을 했다. 나도 예전에 잠시 인연을 가졌던 독일상사처럼 내 가족, 벗과의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걸 이번에는 내 벗들이 가르쳐주었다.
참 다행이다. 내 인생에 이런 벗들에 내 옆에 있어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