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배우는 그림 그리기
그리기 경험이 많지 않은 입문자가 첫 그림으로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면, 보고 그리기, 특히 명화 모작을 추천한다. 소재로 삼을 작품이 많기 때문에 정물화, 풍경화, 인물화 등 내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보고 그리는 과정을 통해 작품의 구도, 소재, 색상, 기법 등을 배우며 나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된다. 명화가 그려진 배경과 작가에 대해 조사하면서 지식도 습득할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모작은 빈센트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이다. 고등학생 시절 1000피스 퍼즐을 구매해 가로 65cm, 세로 90cm 크기의 액자까지 맞추어 완성작을 방에 걸어두었을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명화이다. 이 그림이 좋았던 이유는 바로 채도 높은 노란색과 짙은 푸른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실점이 있는 구도와 그림의 주인공이 명확한 것도 좋았다.
본가에서 발견한 오래된 그림노트에 ‘2008년’이라고 적힌 <밤의 카페테라스>가 있었다. 컴퓨터용 검은 사인펜으로 라인을 그리고, 당시 가지고 있던 수채색연필로 색칠한 게 전부인, 엽서 사이즈의 작품이었다. 빈센트는 하얀 캔버스에 노란색의 보색인 보라색을 먼저 칠하고 그 위에 노란색을 칠해 더욱 선명하게 색을 표현했다고 한다. 내 그림은 얇은 연습장 종이에 색연필로 칠한 것이라 유화처럼 선명하진 않았다. 노란색 부분에 옅은 주황색으로 명암도 살짝 넣고, 짙은 어둠은 검은색과 남색을 함께 칠해 단조로움을 피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도서관에서 빌린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32가지』라는 책에 따르면, 하얀 옷을 입은 웨이터와 손님들이 예수와 12제자라고 한다. 황급히 모작을 살펴보니 다행히 카페 손님 수가 딱 12명이었다. 아버지가 목사였던 빈센트는 말년으로 갈수록 그림에 종교적인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모작을 통해 그림 안에 있는 상징을 찾아보고, 나만이 담을 수 있는 특별한 상징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입시미술 같은 전문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취미로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구상이나 창작의 힘이 부족한 상태에서 가장 쉽게 그림에 접근하는 방법은 바로 모작이었다. 2023년 3월부터 1년 동안 SNS에서 만난 분들과 오일파스텔로 꽃 삽화 모작 챌린지를 했다.
왕초보 시절에는 꽃과 열매, 잎의 특징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따라 그리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2개월 후에는 40개의 작품이 생겼다. 3개월 차부터는 신기하게도 꽃 사진을 보면서 선으로만 그리거나 원하는 색으로 칠하는 응용이 가능해졌다. 보고 그리기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면 꽃 라인을 보는 법이나 그림자 터치, 입체감을 살리는 방법을 익히는 데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처음 모작을 시도한 왕초보는 원래 작품과 내 그림이 똑같지 않을 때 가장 스트레스가 심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렇다면, 원래 작품과 똑같이 그리는 게 ‘잘 그리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당연히 연습이 더 필요하지만, 구도가 다르고 색이 달라도 괜찮다. 조금 어긋난 선이나 진하게 칠해진 색상 자체가 나의 스타일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림 그리기를 시도했고 ‘내 작품이 완성됐다’는 사실 자체가 왕초보에게 큰 힘이 된다.
첫 번째 모작이 완성되어야 두 번째 모작을 시작할 용기가 생긴다. 그림 실력을 키우려면 ‘일단, 뭐라도 그려보자 ' 정신이 필요하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초보화가로서, 2024년에도 많은 그림을 보고 따라서 그리며 좋아하는 구도와 소재, 재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그림을 그리며 나의 그림체를 찾아보려고 한다. 모작으로 시작하는 그림 그리기를 통해 왕초보인 당신도 그림에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