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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다 Jan 01. 2023

상담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과연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만18개월 3주, 첫 상담. 둔해서가 아니라 예민해서였다.

첫 발화 이후,


책 속 아빠가 아닌 실물 아빠에게 ‘아빠’라고 말하고,

‘따따따따’ 이런 식의 옹알이를 시작할 무렵

있음이와 나는 무발화센터에 첫 상담을 하러 갔다.


남편이 운전을 하는 그 길이 참 길게 느껴졌다.

아침 10시에 출발해 한 시간여 달리는 동안 터널이 많아서다. 바깥 풍경을 보면 좀 덜 답답할 것 같았다. 아이도 그런 것 같았다. 소금빵도 조금씩 먹이고 카시트에 앉아있기 힘들어할 때면  내 목을 안을 수 있게끔 아이에게 몸을 가까이 붙이고 이동했다. 멀미가 느껴졌다.


센터는 아파트 안에 있는 집이었다. 거실 공간에 놓인 소파에는 상담에 들어간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었다. 3개의 방은 모두 문이 닫혀 있고, 각 방에서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도 평상시처럼. 공동육아나눔터에 놀러 온 것처럼 했다. 오늘도 놀러 온 것이라고 말하며, 거실에 있던 장난감 자동차를 있음이에게 내어줬다.


어느새 11시가 되고, 방 문 하나가 열리며

남자 선생님이 나오며 우리 쪽을 살짝 보자,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넘는 상담을 했고.

아이가 잠든 후 불이 꺼진 거실에 노트북을 켜고 그날의 경험을 느린 맘 카페에 남겼다.



1. 언어가 아니라, 심리가 먼저인 아이다

상담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가겠다고 문을 가리키며 엄청 울었어요. 제가 관심을 돌리려고 과자(음식을 좋아해서)도 쥐어주고 장난감도 보여주고 했지만 이미엄청나게 울고 있어서 안 먹혔어요. 그렇게 5분 이상 10분 정도 계속 나가겠다고 나가겠다고 했고요


그러자 선생님이 "나가고 싶으면 나갔다와, 근데 엄마는 여기 있을 거야"라고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밀당을 해야 한다며..

자기가 그렇게 소리 지르면 엄마가 들어줬기 때문에 그걸 이용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갔다 와도 좋아라고 하며 떨어뜨려 놓으려고 시도하자 엄마인 저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더라고요. 떨어뜨리고 안아주고를 5번 정도 반복했고


점점 안정되는 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저에게 안긴 아이를 아이가 매달려 있는 게 아니라 엄마가 안아주는 걸로 바꿔야 한다며

팔도 제 팔로 감싸서 꼭 안아주라고 하셨어요

정말 꼬---옥 이요.


그랬더니 아이가 조금씩 진정을 하는 거예요

그럴 때 긴장해서 빨라진 목소리 말고

느긋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낯설어서 무서웠구나.

하면서 쓰담쓰담해주라고 하셔서 그대로 했어요


그랬더니 잠이 들어버렸어요. 나쁘진 않은 거라고

아드레날린이 막 분비되다가 편안해져서 자는 거라고 하셨고 저도 선생님과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오랜만에 언어보다 심리(불안)가 먼저인 아이가 왔다며 이 아이는 불안을 잡으면 언어가 올라갈 거다라고 하셨어요




2. 조언 내용

- 엄마가 자리를 뜰 때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해주고 가라(화장실 갈 때도)

- 할머니, 아빠가 하루 10번 꽈악 안아줘라

- 애착인형을 놀이 때도 함께 하고 잘 때도 함께 자게 해라(엄마 이외의 애착 대상 필요)

- 애착이불은 몸을 눌러주는  무게감 있는 게 좋다


- 혼자 가만히 있다가 "후~~" "엄마엄마엄마" "아빠아빠" 한다고 했더니 이미 소리 낼 줄 아는 단어를 아이에게 말할 때 끼워 넣어 말해라. 하지만 아이에게 말을 했으면… 하는 엄마의 의도를 들키지 않게 티가 안 나야 한다.


-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참 중요하다. 아이가 이 시기 남자아이들과 비교하면 늦은 거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느리다고 가정할 때, 천천히 키우겠다고 마음먹으면 된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남들과 비슷하면 되지 않은가 문제가 있다고 프레임을 씌우면 진짜 그렇게 자랄 수도 있다.


- 병원을 무서워하면 병원을 매일 데리고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와라

- 아이가 불안한 것은 아이가 그 부분에서 예민한 것도 있겠지만 엄마가 편안한 목소리를 연습하자

- 둘째와 상호작용하다가 첫째가 끼어들 경우, 첫째에게 둘째 기저귀 갈아주는 거 도와줄래?라고 제안 하거나 둘째에게 언니에게 뭐 해줄까? 하고 제안하자. 첫째에게 바로 관심을 옮기지 말자




3. 앞으로의 계획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으면 된다.

아!라는 소리를 하는 빈도가 높아지는 것도 성장이다.

꼭 말을 해야 성장이 아니다.

만 23개월이 되었을 때 지금과 똑같다면 다시 와라.

지금 이 아이는 치료는 하지 않아도 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소아과에 가서 물어보세요. 소아과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가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소아과의사 하정훈 <삐뽀삐뽀 119>

소아과 의사 선생님께 받은 상담은 아니었지만, 상담 후에 가장 많이 떠올랐다.


아이를 첫째보다 순하다고 여겼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둔해서가 못 느꼈던 것이 아니라, 예민해서  다 느끼면서도 참고 있었던 것이 분명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다음 날부터,

물 먹으러 잠깐 주방에 다녀올 때,

화장실에 갈 때,

아빠에게 잠시 말하고 내가 집 안의 어딘가로 이동할 때,

허공이나,
아이의 등에 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맞추며


“엄마 화장실 다녀올게 “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당연히 싫다고 했다. 그건 아이 몫이라 했다. 말하고 가는 것이 엄마 몫인 거라고. 그래서 안정감을 줘야 한다. 엄마는 말없이, 아니면 등뒤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거다.


같이 간다고 따라나설 때면 같이 갔다.

빈자리를 덜 느끼게 아빠, 언니와 같이 식사를 하게 하는 습관도 생겼다.

그렇게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작은 조각을 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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