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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Savinna Jan 28. 2024

우리, 다양성-소통으로 만나볼래?

청년들과 함께 쓰는 다양성 그리고 소통

 안녕하세요. 곽수현 사비나입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고 나니 이렇게 저렇게 글을 쓸 일이 자꾸 생깁니다. 어쩌면 그 덕에 글이 모아지는 지도 모르겠네요. 마침, 2024년 1월에 청년들과 시작한 모임이 있기에 우리들의 시간을 글로 남기기로 하였습니다. 디지털 스토리지 개념이랄까요.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푸르고 희망차며 세상이 핑크빛 행복으로 가득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세세한 부분은 개인별로, 상황별로 다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대의 청년들은 선대가 겪어보지 못할 정도의 극도의 경쟁 상황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 장단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내고) 있으니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인별로 상황별로 다르다고 갈음하는 이유는,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새로운 주제도 아니죠. 서로 경쟁하듯이 이야기를 풀어들 냅니다. 그리고 거기서 진이 빠져서 딱 멈춥니다. 이러저러해서 그러하므로 당연히 어쩌고 저쩌구...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저까지 굳이요. 에너지를 모아 제대로 써야 하지 않나 싶거든요.


 이 친구들은 구조적으로 갇혀 있으며, 간과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노오력이나 자질의 부족함이 아닙니다. 본인들은 자신의 처지를 알 수도 있고 영영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이 시대 구조가 그러하므로 청년 개인이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것이지요.


 자자 우리 때는 말이야라고 시작을 한다면, 뭐 이미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겠지요. 청년들 주변에 저 말고 어른이 없었겠습니까, 부모 형제 친척이 없겠습니까. 어마무시한 사교육 비를 내고 만나는 사람들도 역시, 어른인걸요.


  친구들의 고민은 사회 구조에서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점잖게들 말씀하시는 '이 시대에 공부가 무슨 필요가 있니. 공부가 아니더라도 흠흠- 넌 젊으니까, 네가 평생에 하고 싶은 것을 하나 찾아서, 네가 최선을 다하고 노력을 해서 죽을 각오로 한다' 하더라도, 평범한 청년 한 개인이 깰 수 있다고 저는 믿지 않습니다. 은근히 깔보며 말들하는 '개천의 용' 조차도 이 시대에 어디 가당키나 한 것인가요.



아래를 보아주세요.


 - (알바 6년 차, 알바의 신) 알바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불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상식적으로 정서적으로 허용할 수 없는 업무 강도와 책임; 그리고 처분과 임금에 당황하는 청년

 - 고생고생해서 대학을 갔더니(소위말하는 지잡대), 학과에 신입생이 10명도 되지 않는 것을 입학하고 나서야 알았다며 바로 재수를 결심한 청년

 - 자기는 집안이 가난해서 월 300은 벌어야 하는데 어쩌고 저쩌고 해서 일은 하고 싶지 않은(건전한 노력으로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다고 믿지 않는, 자기도 모르지만 사회를 불신하는) 청년

 - 이렇다 할 전문성이 없다(아니 도대체 20대가 얼마나 전문성이 있습니까)며 여러 회사에서 허접하게 취급을 당하다 보니, 아버지의 눈에 불이 나서, 야 그 돈 받고 일할 바에는 아빠 회사에 들어와 일하라(아버지 회사도 회사라기보다, 자영업으로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일을 하는데 간혹 일이 더 들어오면 다른 알바를 쓰는 자리에, 그 돈 받고 일 배우라)며 아버지게 욕을 간간히 먹으며 뭔가 불안하게 일하는 청년

 - 미래를 잘 모르겠고, 학교를 잘 가고 싶지 않고, 친구들과 각자의 자퇴 시기를 의논하는 고등학교 청소년

 - 멀쩡히 해외 유학까지 보내놨더니, 그것도 후지지 않은 학교의 후지지 않은 학과(이것도 지극히 코리안 스타일 스탠더드입니다만), 그냥 번아웃 와서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청년

 - 자기는 괜찮다며 마치 초월한 듯 말하지만 사실은, 그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도 마음을 주지도 못하고 그냥 다 괜찮다고 하며 아닌 척하는 청년

 - 저 그래도 돈 꽤 벌어요 하며 월 15-20만 원을 벌며 (아이팀) 소비 중독이 되어가는 청소년

 - 자기는 어, 아주 멋진 사업가가 되어 어, 돈도 많이 벌고 어, 그래서 가족이랑 지인도 좀 돕고 하면서 어, 큰 인물이 되겠다고 청산유수 말을 하는; 밤새 게임하느라 학교를 제때 가지 못하는 청(소)년

 - 저는 공부를 못하고 저희 집도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저는... 하면서 자기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주눅 든 청소년


 아, 내 자식은, 내 주변은 저런 청소년과 청년이 없어서, 잘 살은 인생인가요. '우리'만 아니면 다 괜찮은가요? 이야기를 한 친구들의 학연-지연-혈연 우습지 않습니다. 저에 대한 신뢰로, 자기의 삶을 진솔하게 열었어요. 그들은 말했고, 저는 들었고, 여기에 일부 옮깁니다.


 어떠셔요. 가슴 짠한가요. 허황스러운가요? 저는 둘 다 아니에요. 사실, 이 친구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판단하지 않고 한 편으로 함께 하겠다는 제 의지는 더 깊어지던걸요... 저의 섬세한 냉소와 냉랭함과 비아냥이 느껴지실 겁니다. 사실, 이렇게 몰아간 우리 어른들에게 처절한 반성과 책임을 묻고 싶어요. 화가 납니다. 하지만, 하지만 해서 뭐 합니까. 제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지도 모르겠고, 제 개인의 행복은 또 누가 지킵니까.


 저는 믿습니다. 우리 일상과 사회에 다양성과 소통이라는 키워드가 추가가 된다면, 우리가 가진 장점은 술술 풀릴 거라고요. 우리 생긴 꼴대로 즐겁게 이 모습 그대로 흐를 것이라고요. 힘차고 큰 줄기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러한 대로 순리대로 풀리면 됩니다. 보다 더 다양하고 소통이 쉬운 사회가 되어 이 친구들이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이 저는 보입니다.


 자자 그럼 만들면 되지요. 이들 덕분에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부터 영어라는 키워드로 십 년을, 30대 중반부터는 진로직업으로 또 다른 십 년을, 그리고 다양성과 소통이 앞으로 십 년 정도 제 삶의 키워드가 되겠네요. 막상 하기로 마음을 먹으니 제 스스로가 제일로 설레는 거 있죠!



우리 다양성-소통으로 뭘 해보자!


엥? 그게 뭔데요?


음.. 뭔지 모르지만, 뭐라고 알려 줄 수가 없는 것이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한 달에 한 번은 좀 적은 것 같아서 두 번 어때? 가급적이면 얼굴 보고 만나자, 그런데 뭐 이 시대에 줌 등 온라인으로도 소통이 가능하지. 주제나 방식 형식 등은, 우리끼리 정하면 되고... 아니야 너 이런 거 잘하잖아 네가 정해라. 나? 샘은 뭐, 음.. 입 다물고 지갑을 열어야겠지. 나야 뭐 가끔 밥이나 사주고 생색도 좀 내고. 필요한 장소 제공이랑 어른들과 소통이 필요하면 그거 풀어주는 역할이나 하면 되고 등등.. 여튼 나 끼워줘, 나 버리지마.


에이... 샘(대표님, 이사장님), 당연하쥐요.


 한 달 내내 카톡으로, 전화통화로 생각날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십여 명 정도가 단톡방에 모였습니다. 제가 직접 아는 청년-청소년 말고도 더 확장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청년 중 한 명이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을 언급하기에 연락을 했습니다. 흔쾌히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부끄럽지만 SNS에 홍보도 하고요(아래 사진은 음... 여러 장 중에서 저만, 오로지 제가 잘나온 것으로 골랐습니다).



  그리고 첫 모임을 했습니다. (다음은 다양성-소통 위원회 위원장 박건우99님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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