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나의 맹목적 지향점은 아니지만 내 삶 곳곳에 머물러 같이 호흡하고 있음을 종종 깨닫는다.
뜨거운 오후 거리를 걷다가 숨이 턱 막히는 순간에도 머리 속으로 글을 쓰듯 생각을 쌓고 둥글리며 순환시킨다.
지면이나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려가며 눈에 보여지는 글자를 쓰지는 않아도 어쩌면 나는 늘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글은 곧 생각이다.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
대담한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책을 많이 읽어야 좋다는 말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 말이 틀렸다는 말도 아니고 무조건 읽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모두가 똑같이 책을 읽으라고 권장하고 추천하는 사회에서 약간의 피로감과 반항심이 생긴다고 해야할까.
글이 생각의 표현이라면서 자기만의 온전한 생각으로 좀더 무르익게 놔둘 수는 없는건가.
타인의 생각을 꼭 책으로 보고 배워야만 통찰이 생긴다고 느끼진 않는다.
예수와 부처가 다량의 책을 통해서 삶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당시 활자나 인쇄술이랄 게 없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나의 생각'일 것이다.
책을 읽으라고 들들 볶아대거나 자기를 꺼내 상처를 치유하며 책을 내라고 강권하는 경우도 있다.
책을 낸다고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을 맞대하면서 내 생각을 다져 둥글려내는 깊이와 태도가 상처를 극복해내는 열쇠가 되는 것이겠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건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그게 꼭 책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개인의 상처를 도구 삼아 작가에게 현실적으로 도움되지도 않는 출간 계약으로 연결시키는 곳이 있다면 좀 더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진석 교수의 '사유의 시선'에서 말하듯 물건이 아닌 철학을 지향하는 삶, 바로 사유하는 삶으로 우리는 회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을 통해 사유하는 삶도 멋지고 때로는 배우고 싶다.
그러나 가끔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어쩌면 글보다 책이라는 물건에 더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