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마이 Oct 28. 2022

양자경이 국세청에서 쿵푸를 하는데 결국 큰 위로가 됨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미국/139분/액션

감독 :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 : 양자경, 스테파니 수 외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verywhere'




멀티버스, 평행우주, 어느 순간부터 어색하지 않게 우리 주변을 맴도는 단어들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느꼈던 시대를 지나, 어느새 확률적으로 존재할 것이라 믿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아졌다. 우리의 수많은 크고 작은 선택들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켜 훗날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상상력. 나와 다른 내가 살아가는 수많은 평행우주. 마블이 하고자 했고 계속해서 도전했던 그 찬란한 우주가 이 영화에 '한 번에' 담겨 있다. 



이 광활한 우주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보잘것없다는 말을 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보잘것없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어느 것 하나 이 넓디넓은 우주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 우주가 어느 존재의 뇌 속이고, 행성들과 생명들은 일종의 뇌세포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각기 다른 수많은 뇌세포들이 각각의 평행우주인 것이다. 




조부 투파키는 말 한다. 대부분의 우주에서 우리는 생명체가 아니라고. 그래서 그들은 '돌'이 된다. 모녀간의 복잡한 관계를, 나의 인생과 상대방의 인생을 모두 감싸고 공격하며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다. 그냥 그들은 '돌'이 된다. 우리의 또 다른 우주에서, 또 다른 세포에서 우리의 삶은 어떨까? 그 상상의 끝을 어디까지 펼칠 수 있을까? 아마 이 영화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선사해 줄 것이다.
















'Everything'






우리를 규정하는 것들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다. 어제 먹은 저녁, 오늘 입은 옷차림, 10년 전에 보았던 책, 5년 전에 싸웠던 친구...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미우나 고우나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동양인이기에, 딸이기에,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받고 핍박받는 사람들이 있다.


에블린 역시 동양인이자 누군가의 딸로, 여성으로 핍박받으며 고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동성애자인 조이를 이해하지 못하며 '정상 가족'의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란다. 이 모순적이지만 당연한 사고방식은 지금 우리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반영한다. 인어공주가 '흑인'이라며, 게임 속 캐릭터들이 '게이'라며,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막는다며 '한국인'들이 목이 터져라 욕을 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 영화는 말한다. 세상에는 손가락이 핫도그이고, 애정표현이 손가락에서 케첩과 머스터드가 나오는 세상도 있다. 너구리가 요리를 해주는 세상도 있고, 인형인 세상, 심지어는 '돌'인 세상도 있다. 지금 경찰관의 곤봉을 딜도로 만들어서 살인까지 저질렀는데, 아직도 겨우 동성을 좋아하는 것 따위가 당신에게 문제가 되느냐고 말이다. 이 넓디넓은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하지도 못하면서, 겨우 그런 이유로 질겁하고 남을 미워하느냐고 말이다. 


손가락이 핫도그라면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치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면 된다. 실제로 사고로 손을 잃으신 장애인분께서 나에게 발로 그린 그림을 보여주시며 하셨던 말씀과 똑같았다. 비록 돌이라 해도 장난감 눈알을 붙이고 움직이면 그만이다. 규칙은 만들면 그만이다. 누가 이성만을 좋아하라고 했는가? 누가 백인만이 인어공주를 하라고 했는가? 누가 감히 그런 규칙을 만들었느냔 말이다. 겨우 '인간' 주제에 말이다.














'All At Once'







이 멋진 영화는 강렬한 메시지와 함께 충격적인 비주얼도 선사한다. 에블린이 모든 멀티버스의 에블린을 경험하는 장면은, 영화사에 어떤 방식으로라도 한 획을 그었으리라 확신한다. 돼지를 끌고 등장한 엘비스-조부 투파키의 첫 장면, 케이팝 가수를 연상시키는 여러 조부의 화려한 의상들과 더불어 수많은 장르를 드나든다.




'라따뚜이'가 아니라 '라카쿠니'는 코미디 영화를, 광활한 암석을 바라보는 돌이 된 그들과 자막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다큐멘터리를, <화양연화>를 연상시키는 에블린과 에드워드의 대화는 홍콩 영화를, 이마에 스테이플러를 집은 채 달려오는 국세청 직원과의 추격전은 호러 영화를, 시각 장애를 가진 가수와 피자 걸이 되어 펼치는 전투는 그 어떤 액션 영화를 데리고 와도 전혀 손색이 없다. 로맨스와 가족이라는 가치관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끝나는 이 영화는, SF라는 장르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한 영리하고 깜찍한 영화이다. 



특히 극 후반부 에블린과 조부 투파키의 전투 장면은 정말이지 굉장하다. 모든 세계를 프레임으로 쪼개 넘나들며 각축전을 벌이는 그 모습은 마블이 하고자 했었고, 모든 SF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바랐던 바로 그 장면일 것이다. 결국 그 공포스럽던 조부 투파키가 '조이'로 돌아오며 에블린과 포옹하는 장면 바로 직전, 지구와 그 지구의 위성이 충돌하는 장면은 엄청난 울림을 가져다준다.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줄 알고, 시각을 감정으로 전환시킬 줄 아는 영리한 감독들이다.




모든 것이 엉망이고 좌절되었을 때, 우리는 결국 다시 희망을 찾을 것이다. 라카쿠니를 찾기 위해 이번엔 에블린이 달리고, 이미 굴러떨어진 조이는 내가 또 굴러떨어지면 된다. 손가락에서 나오는 케첩을 받아먹으면 그만이다. 내가 모든 평행우주의 '나'중에 가장 못난 놈이라고 해도, 나는 그 모두가 될 수 있는 '나'이다. 노래방 기계 구입 영수증을 어떻게 분류할지 고민하던, 바로 그 에블린처럼 말이다!











+ 할리우드 스타가 된 에블린의 우주에서, 실제 양자경의 레드카펫 모습들이 삽입되었는데, 정말 끝내주게 멋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 중간에 에블린에게 스팽을 당하는 남성이 나오는데, 이 남성은... 이 영화의 감독이다.

+++ 국세청 직원의 트로피가 딜도 모양인 것과, 국세청 직원들을 묘사하는 것에서 이들이 국세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 이 영화가 지닌 이 훌륭한 메세지와 연출력을 느끼니, 어째서 이 영화가 A24 최고의 역주행 흥행 기록을 세웠는지 단박에 이해가 갔다. 양자경은 정말... 정말 굉장한 배우다



2022년 상반기 최고의 영화가 <우연과 상상>

2022년 하반기 최고의 영화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다.

아마 근 10년간 최고의 영화가 될 수도...?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가슴 가슴 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