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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마이 Apr 01. 2022

젠더의 무의미함

<티탄> 리뷰





<티탄>

(TITANE, 2021)

프랑스, 벨기에/108분/드라마

감독 : 쥘리아 뒤쿠르노

출연 : 뱅상 랭동, 가렌스 마릴러 외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젠더의 재정의


 감독의 전작 <로우>와 같이, 영화는 자동차 사고로 그 시작을 알린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티타늄을 머리에 심게 된 주인공 알렉시아. 영화는 티타늄을 심은 사실과 알렉시아가 자동차에 어떠한 방식으로의 호감을 느끼게 된 인과관계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 <TITANE>은 티타늄을 뜻하는 단어이며, 남성명사 ‘TITAN’의 여성명사이다. 마초적인 ‘남성’의 상징으로 치부되는 모터쇼에서 쇼걸로 일하는 알렉시아는 관능적인 춤을 선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남성의 시선, 메일 게이즈(male gaze)로 화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알렉시아의 시선에서, 타자화 되지 않은 알렉시아의 몸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알렉시아를 강간하려던 남성은, 알렉시아의 꼬챙이에 의해 죽고 만다.


 알렉시아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별과 관계 없이 성관계를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 알렉시아가 유일하게 수행한 성관계는 다름아닌 자동차와의 성관계이다. 이 역시 알렉시아가 지닌 젠더의 무의미함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부분이라 볼 수 있겠다. 성관계를 하려던 여성을 살해하고, 함께 집에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 살해한 알렉시아는 결국 수배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생활을 이어나갈 방법으로, ‘아드리앵’ 이라는 존재가 되기로 한다. 압박붕대를 통해 ‘여성’이라 묘사되는 신체를 가리고, 퀴어혐오적이며 마초적인 소방관 집단. 그리고 그 집단의 우두머리의 ‘아들’이라는 위치로 살아가게 된다.


 알렉시아, 아드리앵은 여성도 아니며 남성도 아니다. 그 밖의 다른 젠더 역시 중요한 부분이 되지 않는다. 뒤쿠르노 감독에게 인체는 어떠한 성별로써 보여지는 것이 아닌,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는 하나의 물질일 뿐이다. 모터쇼에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알렉시아의 춤은, 후반부 소방차 위에서의 아드리앵의 춤으로 마무리된다. 알렉시아와 아드리앵은 같은 존재임에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이 수미상관을 통해 뒤쿠르노 감독은 전통적 젠더관념을 완전이 무너뜨리며 젠더의 무의미함을 역설한다.  











젠더를 넘어선 인간이라는 존재    


 영화 초반부 등장한 알렉시아의 아버지. 아버지는 알렉시아와의 소통을 음악을 크게 함으로써 애써 무시한다. 이는 결국 사고로 이어지고, 아버지와 깊은 감정의 교류를 하지 못하는 알렉시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아드리앵이 자신의 아들이라 믿는 뱅상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부성애’의 문제가 아니다. 뱅상이라는 존재는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스테로이드를 주사하며 때로는 심한 부작용에 고통스러워함에도, 마초적인 소방관 집단에서 ‘존재’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신체를 파괴하며 덧없는 남성성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 남성성을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결국 아드리앵이었다. 아드리앵에게 스테로이드 주사를 놔달라고 하는 뱅상의 행동은 자신의 늙은 신체를 보여줌으로써 아드리앵을 향한 그의 무조건적인 믿음을 의미한다. 아드리앵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알아챈 뱅상의 아내는, 아드리앵을 혐오스러워 하면서도 임신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드리앵의 손을 잡아준다.










 마초적이고 남성적인 집단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소방관 집단에서의 아드리앵의 존재, 아드리앵이 무너뜨리는 소방관 집단의 구시대적 젠더관념. 그리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그의 아들 아드리앵과의 관계, 이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사건들이 하나의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드리앵은 결국 자동차와의 아이를 낳는다.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던 아드리앵은 결국 뱅상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애원한다. 아드리앵은 예수임과 동시에 마리아이다. 척추에 티타늄이 박혀 있는 아이가 태어난다. 신인류가 등장하고, 뱅상은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뒤쿠르노 감독은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이의 성별이 여성이라 밝혔다. 영화는 기어코 인류의 재생산을 외치며 끝이 난다. 이 기막힌 이야기는 분명히 혼란스럽고 기이하다. 그러나 이 <티탄>이라는 영화는 분명히 외치고 있다. 우리의 몸은 그저 몸일 뿐이라고,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약한, 있는 그대로의 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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