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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마이 Apr 05. 2022

교육자의 덕목

<나쁜 교육> 리뷰




<나쁜 교육>

(Bad Education, 2004)

스페인/105분/멜로,로맨스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펠레 마르티네즈







끝 없이 소비되는 욕망의 대상 ‘이그나시오’


 수도원에서 이그나시오는 마놀로 신부의 욕망의 대상이다. 여름 캠프에서 마놀로 신부는 이그나시오를 겁탈하려고 한다. 도망치던 이그나시오는 넘어져 이마에 상처가 난다. 그 상처는 곧 반으로 갈라져 화면을 갈라놓는다. 페드로 감독의 전매특허인 원색적이고 강렬한 연출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를 시발점으로 이그나시오는 끝없이 소비된다. 수도원에서 이그나시오는 철저히 마놀로 신부에 의해 소비된다. 교장이 된 마놀로 신부를 위해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만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른다. 성직자의 가면을 쓴 소아성애자의 ‘나쁜 교육’, ‘나쁜 소비’의 시작이다. 신이 우리를 벌할 것이라 걱정하던 소년은, ‘지옥을 믿지 않으니 두렵지도 않았고, 공포가 없으니 뭐든 할 수 있었다.’라며 마놀로 신부의 욕망을 대면한다.







 성인이 된 이그나시오는 첫사랑 엔리케에게 또다시 소비당한다. 자신을 이그나시오라고 속인 그의 동생 ‘후안’이 엔리케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엔리케는 곧그를 의심한다. 이그나시오와의 옛 추억을 알지 못하며, 배우가 되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가감없이 표출한다. 엔리케가 알던 수도원의 이그나시오는 이렇지않았다. 그럼에도 엔리케는 관념의 이그나시오를 소비한다. 후안의 육체를(실제로는 이그나시오를) 욕망하며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를 소비한다. 후안은수영장에 들어가려 속옷을 벗다가 엔리케의 시선을 의식하며 속옷을 내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엔리케’와 희망찬 미래를 꿈꾸던 이그나시오는 이렇게나 잔인하게 또다시 소비된다.








 그의 동생 후안에게 역시 이그나시오는 소비당했다. 이그나시오의 죽음을 속이며, 본인의 삶을 위해 후안은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내뱉는다. 후안에게 있어 늘 치욕스러웠던 이그나시오의 존재는 그의 죽음 후에 후안에 의해 소비된다. ‘게이’가 되는 연습을 한다는 후안의 말로 그 폭력성은 배가된다. 결국각본 <방문>의 마지막 장면, 자하라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찍고는 후안은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으로 오열한다. 이 눈물과 괴로움으로 인해 이그나시오의소비는 더더욱 견고히 완성된다.







 이 모든 소비, 이 ‘나쁜 교육’의 시작이었던 마놀로 신부는 결국 마지막까지 이그나시오를 소비한다. 엔리케에게 이그나시오를 죽인 것은 후안이며, 자신은 이제 변해버린 이그나시오를 욕망하지 않는다 말한다. 이그나시오는 그렇게 철저히, 잔혹하게 소비된다. 마놀로 신부는 이제 후안을 욕망하며 과거 이그나시오에게 행한 ‘나쁜 교육’을 재생산한다. 성직자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그의 추악한 욕망이 결국 이그나시오의 삶을, 심지어는 죽음 이후까지 그를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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