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깃발을 세우고 유영하며 성장하는 브랜드
브랜드 언박싱(brand unboxing)은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기록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우리 주위에 숨겨진 브랜드가 빛나는 과정을 탐구합니다.
Interviewer’s Comment 브라운브레스의 첫 시작은 힙합과 스트릿 문화를 사랑하는 친구들의 작당 모의였다.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보다는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해 국내 1세대 스트릿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2019년 의류 제조 전문회사에 인수된 이후 자본력과 시스템을 보완하고 그동안 쌓아온 정체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고객을 찾아 도전을 이어 나가고 있다. 브라운브레스의 창립 멤버이자 여전히 디렉팅을 맞고 있는 이지용 디렉터를 만나 그동안의 여정과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익숙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브랜드, 브라운브레스를 언박싱해보자.
융: 안녕하세요. 브랜드 언박싱 독자들을 위해 브랜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지용: 안녕하세요. 브라운브레스는 2006년부터 힙합과 서브 컬처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다양한 제품을 만든 브랜드입니다. 저는 창립 멤버이자 현재도 디렉팅을 맡고 있는 이지용입니다. 반갑습니다.
융: 2006년 처음 시작할 때 이렇게 오랫동안 브라운브레스를 운영하실 줄 알았나요? 초창기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해요.
이지용: 예전에 멤버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제가 제일 먼저 그만둘 것 같다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여전히 브라운브레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웃음) 사업을 하고 있다거나 출근한다는 마음은 아니었어요. 이태원에 해외 힙합과 스트릿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편집샵이 있었어요. 여기서 친해진 4명이 크루처럼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재밌는 거 같이 해보자'는 마음으로 무작정 뛰어들었어요.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만들다 보니 시간이 흘렀네요.
융: 브랜드로 자리 잡은 과정이 신기해요.
이지용: 창립 멤버 중에는 이태원 편집숍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었고, 회사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어요. 아무도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각자 브랜드를 작게나마 하고 있었거든요. “티셔츠를 각자 30장씩 만들었던 걸 의기투합해서 100장을 만들어보자.” 이렇게 단순한 이유로 모였습니다.(웃음)
융: 정말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일이네요. 브랜드 소개에 ‘반항적이지만 시끄럽지 않은 디자인'이란 건 어떤 의미인가요?
이지용: 초기에 설정한 브랜드 프로필인데요, 복잡하게 설명하거나 과하게 포장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무겁거나 비판적인 이야기를 해도 누구나 쉽게 손이 가는 제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융: 그럼 브라운브레스의 브랜드 슬로건인 ‘Spread the Message’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이지용: 초반에는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도 다르고 취향과 그래픽 스타일도 달랐어요. 여러 개의 개별 브랜드가 모여있는 크루와 같은 느낌이랄까요? 다만 추구하는 지향점은 같았어요. 현시대를 살아가며 드는 생각을 담았다는 거였죠.
슬로건에 대한 비하인드 이야기를 더해보자면, 무신사 스토어에 처음 입점했을 때 브랜드숍 디자인 배너 작업을 해야 한다고 연락이 와서 만든 슬로건이었어요. 팀원들 반응이 좋아서 아직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브라운브레스는 로고 제품이 많이 나오는 편이긴 하지만, 여전히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경험한 것을 메시지로 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융: 제가 브랜드 언박싱에서 인터뷰한 곳 중 가장 오래된 브랜드예요. 1등 하는 것보다도 오래가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이켜보면 어떠세요?
이지용: 브랜드 자체로서 나름 재미있게 잘 흘러왔다고는 생각하지만, 창립 멤버들 말고도 초반에 으쌰으쌰 하며 함께 일했던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여러 상황으로 같이 고생했던 친구들과 더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한 점이 아쉬워요. 모르는 게 많은 채로 시작하게 된 브랜드였어요. 돌이켜보면 운영적으로 부족한 점들이 많았죠.
융: 만약 브라운브레스의 여정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든다면, 창업자로서 울면서 읽을 것 같은 챕터와 재밌어하며 읽을 것 같은 챕터는 무엇인가요?
이지용: 아무래도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기가 먼저 떠올라요. 브라운브레스 제품으로 수익을 내고 운영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거든요. 별일이 다 있었죠. 제일 기억나는 건 어떤 클럽에 외부 벽화를 그려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을 때인데요. 아파트 3~4층 높이의 외부 벽화를 목숨 걸고 그렸어요. 근데 알고 보니 어두운 세계의 형님(?)이 운영하는 곳이었더라고요. 결국 돈을 못 받았어요. 그래서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 두 명이 가서 작업비를 받아오자고 했는데 제가 걸린 거예요. 다시 한번 찾아갔었는데 끝내 받지 못했어요.
융: 와! 진짜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지난 17년을 돌이켜보면 롤러코스터 같았을 것 같아요. 브랜드 운영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나요?
이지용: 모든 것이 그렇듯 브랜드도 항상 잘 된 건 아니었고 기복이 있었어요. 뻔한 말이지만 정답은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매 순간 후회 없는 선택을 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어요.
또 새롭게 알게 된 거라면 시스템의 중요성이에요. 열정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많았는데, 같은 이유로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더라고요. 오르락내리락하는 순간에도 일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잘 구축해 놓는 것이 중요한 것을 알게 됐죠.
융: 여전히 브라운브레스는 1세대 스트릿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해요. 오랜 기간 동안 브라운브레스의 확고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든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지용: 음악. 그중에서도 힙합이요. 브라운브레스가 완전 힙합스러운 옷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그 정신이 담겨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힙합이 지금처럼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었어요. 학교 전교생을 통틀어 힙합에 열광하는 2~3명 중 하나가 저였죠. 막상 사회에 나가니까 힙합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꽤 있더라고요. 저와 같은 친구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공감대가 생기고, 우리가 좋아하고 즐기는 문화에서 영감을 얻고, 이 재미를 다른 이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융: 초창기부터 음악, 예술 분야의 다양한 아티스트 및 브랜드들과 협업을 이어왔어요. 5주년 때는 국내 힙합 아티스트들과 컴필레이션 앨범도 만드시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도 이건 좀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되는 건 무엇인가요?
이지용: 음악, 예술,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의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말씀하신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은 저희의 버킷리스트였는데 해냈고요.(웃음) 아직도 좀 신선했다고 생각하는 건 자동차를 리뉴얼했을 때예요. 현대자동차 갤로퍼(Galloper) 외관을 브라운브레스답게 마음대로 꾸며서 전시하고 판매까지 이뤘던 적이 있습니다.
참, 한 분야의 장인들을 찾아서 함께한 프로젝트들도 특히 기억에 남아요. 무형 문화재 김대석 장인과 함께 부채를 만들고 수제 축구화를 만들던 신창스포츠 김봉학 대표님과 함께했던 컬렉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많이 회자도 되는 것 같아요.
융: 요즘이야 콜라보나 문화를 통해 브랜딩하는 사례가 많지만, 브라운브레스는 시대를 앞서갔던 것 같아요. 디렉터님에게 브랜딩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지용: 한때는 단순히 브랜딩이 ‘포장’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직접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브랜드는 하나의 생물 같아요. 온전히 개인의 힘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 공동체의 혼이 담긴 생물이요.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고, 언제나 원하는 대로 외부에 비치거나 받아들여지지는 않더라고요.
융: 10년 넘게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고 있지만 공감 갑니다. 브랜드가 어떤 방향으로 알아서 자라고 흘러갈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돌아봤을 때 브라운브레스가 생물처럼 진화해서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 사례로 떠오르는 게 있나요?
이지용: 예전에는 커플티를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커플티로 저희 옷을 잘 입으시더라고요. 지금은 그게 정말 감사하죠.(웃음) 연령층도 가늠할 수가 없어요. 브랜드가 나이 들면서 초창기 고객들도 함께 나이가 드니까 점점 스타일도 달라지고, 브랜드가 힘들었던 시기가 있거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20대 고객이 확 늘어났어요. 의도하지 않았던 고객의 자연스러운 후기 이미지나 스타일링을 통해 제품이 이슈화되는 게 많더라고요.
융: 그럼 브라운브레스를 ‘서브컬처를 생산하고 서포트하는 문화 집단'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지용: 과거 대중적이지 않았던 힙합이 지금은 대세 음악이 된 것처럼, 재미있는 문화와 움직임을 소개하고 다양한 문화가 발전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어요. 서브 컬처의 전체 파이가 커진다면 다양한 브랜드가 더 자유롭게 자기 색깔을 유지하면서 상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융: 2019년에 의류생산 기업에 인수합병 되고 브라운브레스를 재정비하셨어요. 이후 3년 만에 130억 매출을 이루기도 했고요.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지용: 앞서 말한 것처럼 브랜드, 구성원, 고객 모두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딜레마가 있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한 고정관념을 항상 깨고 싶었어요. 재정비하고 낸 첫 번째 시즌 주제가 Reload였습니다. 재정비해서 현시대에 흐름에 맞게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면서 브라운브레스를 잘 몰랐던 새로운 고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는 것 같아요.
융: 매출이 늘고, 새로운 고객을 찾은 지금이 브라운브레스의 제2의 전성기라고 봐도 될까요?
이지용: 그렇지 않을까요? (웃음). 인수되기 전 브라운브레스의 최고 매출을 갱신했고, 생산 회사의 패션 인프라와 시스템을 도입하니까 확실히 제작할 수 있는 제품의 스펙트럼이 넓어졌어요. 새로운 구성원들이 모인 만큼 여전히 서로 더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고 조율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각기 다른 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 생기는 시너지도 있어요. 서로의 장점이 모여 브라운브레스의 새로운 챕터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융: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어떤 브랜드든 변화가 크면 브랜드 색깔이 바뀔 수도 있을텐데요. 여러 상황에도 불구하고 디렉터님이 꼭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었나요?
이지용: 팀원들이 먼저 만족하고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유행한다고 그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브라운브레스의 색깔대로 풀어내고 싶고요. 현재는 이러한 방향성을 팀원들과 조율해가고 있고요. 지금의 시스템을 잘 활용해서 브라운브레스만의 아이덴티티를 녹인 제품과 활동을 만들고 싶어요.
융: 사이먼 사이넥의 저서 <인피니트 게임>에서 비즈니스는 ‘무한게임’이라고 얘기해요. 한번 1등 하고 끝나는 유한게임이 아니라 인생이 계속되듯 사업도 계속되는 ‘무한게임'이니, 이기고 지는 것보다 게임을 지속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요. 힘든 상황에서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었나요?
이지용: 이것도 브라운브레스 21년 S/S 시즌 주제로 풀어낸 적이 있었는데요, 책임감과 의무감이요. 제가 나가고 브랜드 색깔이 달라지면, 이전에 같이했던 친구들에게도 누가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브라운브레스가 지나온 과정과 그 순간순간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융: 브랜드가 성장해 온 시간 속에서 무신사 스토어 역시 빠질 수 없는 키워드 같아요. 브라운브레스의 성장에 있어 무신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해져요.
이지용: 단순히 제품을 올리고 판매를 대행하는 것만이 아닌 탄탄한 플랫폼으로 브랜드로서 많은 부분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신사도 커뮤니티로 출발한 곳이잖아요. 브랜드가 진행할 수 있는 일들이 한정적인데, 무신사에는 다양한 연령층과 여러 스타일의 브랜드가 공존하고 있어 저희가 득을 보는 게 많죠. 어느 순간부터 개성 있게 자기 취향대로 입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우리나라 패션이 업그레이드되는데 무신사의 역할이 컸어요. 패션에 관한 인식은 물론 시장 자체가 발전되었고,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으로 무신사가 자리 잡으면서 브라운브레스도 많은 분들께 알려질 좋은 기회를 얻은 것 같아요.
참, 브라운브레스의 연령층이 다양해진 된 계기도 무신사 스토어 영향이 커요. 이전에는 저희 고집대로 했던 게 많은 것 같은데요, 무신사 스토어 스냅 구좌를 보면 저희 제품과 다양한 브랜드 아이템들을 함께 스타일링하신 고객분들이 많아요. 룩북이나 콘텐츠로 선보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거든요. 이 부분은 저희에게도 정말 좋은 영감이 됩니다.
융: 티셔츠, 후드집업, 백팩 등 카테고리마다 고르게 인기가 좋은 편인 것 같아요. 이 중에서도 특히 애정을 갖고 제작하는 카테고리가 있나요?
이지용: 최근에 저희 슬로건인 ‘Spread The Message’를 STM로고로 새롭게 리디자인해서 선보였어요. 이 로고가 담긴 롱슬리브와 가방 제품이 애착이 가요. 반응도 좋은 편이에요. 게다가 이전부터 브라운브레스가 가방으로 인기가 많았던 터라, 여전히 가방 라인을 잘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요. 이전 영광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 중입니다.
융: 마지막으로 브랜드 언박싱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이지용: 처음부터 다 알고 했으면 오히려 못했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들을 무작정 시작했고, 비전문적이고 불안정한 상태로 매 순간 배우고 수정, 보완하며 흘러왔어요. 모든 것을 한 번에 갖추고 시작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생각한 일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하나씩 하다 보면 단계별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더라고요. 단순히 브라운브레스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대단한 브랜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브라운브레스는 여전히 부딪히며 배우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입니다.
브라운브레스(BROWNBREATH) 더 깊이 언박싱하기
인터뷰어 정혜윤
독립한 마케터 겸 작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회사와 세계 곳곳을 유랑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빠져있는 사람들, 편견을 부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깁니다. 10년 간 에이전시 및 스타트업 업계에서 마케터로 일하다가 2020년 여름, 회사로부터 독립해 현재는 프리랜서 마케터이자 작가로 일하며 다능인을 위한 뉴스레터 '사이드 프로젝트'를 운영합니다. 여전히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