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에 한참 툭하면 체했어서 바늘을 가지고 다니며 내 손가락을 찌른 적이 많다. 그러다가 사혈침이 생겼다. 어디에서 받았었는지 구입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늘보다 훨씬 덜 무섭고 괜찮았다. 그런데 그 사혈침을 내 아이에게 사용하게 될 줄이야.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한 달에 몇 번씩이고 발 뒤꿈치를 찔러 그 피로 페닐알라닌 수치를 검사했고, 입원을 할 때는 혈관에서 피를 뽑아 검사를 했다. 어느 정도 아이가 커서는 매달 아이의 손 끝을 찌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찌르고 피를 봐야 했다.
처음에는 이 작은 아이에게 어떻게 바늘을 찌르나 무서웠다. 그래도 해야만 하는 것이라 했다. 선생님께서 바늘 같은 걸 주셨는데 내 힘으로 눌러서 살을 뚫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는 도저히 못하겠고, 피를 뽑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하다 생각난 게 사혈침이었다. '맞다! 나도 예전에 그렇게 내 손을 찔러댔었지? 나한테 그게 있잖아?' 하면서 사혈침으로 아이의 손을 찔렀다. 뾰족한 바늘을 내가 힘을 가해 살을 찔러야 하는 것은 차마 하기 힘들었다. 지금도 사혈침을 사용해서 피를 검사지에 묻히고 있다. 속 안에 침만 따로 구입할 수 있고 교체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누르기만 하면 침이 나와 툭하고 찔러주는 것이다. 사혈침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금은 병원에서 검사지와 소변솜을 받아 매달 아이의 손 끝을 찔러 검사지에 묻혀 건조한 후 병원으로 보낸다. 소변솜에는 소변을 묻혀서 마찬가지로 건조해 보낸다. 병원에 가서 혈관에서 피를 뽑기도 했는데, 혈관이 얇기도 하고 잘 안보이기도 해서 이렇게 내가 찔러 피를 보는 게 낫다.
어렸을 때부터 바늘과 참 가깝게 지내는 둘째 아이다. 병원에 가면 혈관에서 피를 뽑기도 했는데 어렸을 때는 울다가 좀 커서 어떤 날은 울지 않기도 했다. 기특하기도 하면서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엄지 척을 날려주며 잘했다고 멋있다고 칭찬을 쏟아낸다.
피 뽑기 무섭다고 하기 싫다고 할 때도 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속상했지만 해야만 하는 거니까 '그럼 계속 아플 거냐. 잠깐만 아픈 거다.'라며 냉정하게 말하기도 했다. 매번 슬프고 속상해만 할 수는 없었다.
매달 집에서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묻히는 게 당연한 것이 되었다. 아프기도 하고 하기 싫기도 하겠지만 아이는 지금까지 잘해주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프지 않게 하려고 하는 거다. 해야만 하는 거다. 잠깐 따꼼하는 거다.'라고 늘 말해줬다. 지금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중에 좀 더 커서는 하기 싫다고 할 수도 있고, 왜 해야 하는 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기저귀를 찬 아기였을 때는 소변 받는 게 정말 제일 어려웠었다. 소변봉투를 붙여서 소변을 보면 떼어내서 스포이드같은 것으로 쭉 짜올려 라이터로 입구 부분을 마감해 얼려서 보내야 했다. 그런데 소변봉투가 잘 안 붙거나 움직이면서 떨어졌을 경우 다 새서 기저귀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면 시뻘건 부분에 다시 소변봉투를 붙여야 했는데 얼마나 따갑고 아팠을까 싶다. 한 번에 성공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특히, 병원에 갔는데 갑자기 소변을 받아야 하면 몇 시간이고 소변이 나올 때까지 소변봉투를 붙여놓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소변이 새면, 다시.. 아이도 아프니 울고 나도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변을 변기에 앉아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내가 솜을 잡고 있고 변기에 앉아 소변을 보라고 한다. 내 손에 다 묻으면 어떠하랴. 손은 닦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편한 것을 참 힘들게 받았었구나 싶었다. 역시 시간은 흐르고 그 또한 지나가는 것이었다.
내 손에 한참 아이의 소변이 묻을 테고, 아이의 손 끝을 계속 찔러야 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한다. 그래야 매달 아이의 페닐알라닌 수치를 확인할 수 있고, 수치가 높아졌거나 낮아졌을 경우 pku분유나 일반 분유의 양을 조절해서 수치를 좀 낮추거나 높이거나 조절할 수가 있다. 꾸준히 검사를 하고 조절해야 잘 클 수 있으니 그저 나는 하는 것뿐이다. 아이가 아무 문제 없이 잘 자랄 수 있게 해 준다는데 뭔들 못하겠는가.
나는 아이의 손 끝을 찔러야만 하는 엄마다. 예전에는 한 달에 몇 번이고 찔러야 했지만 지금은 한 달에 한 번만 찌르면 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소변 받는 것도 수월해졌고 말이다.
그저 아프지만 않고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주기만 한다면 나는 계속 아이의 손 끝을 찌르는 엄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