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이야기들을 다 모으면 성공할 수 있는가?
할리우드에서 무조건 들어야 하는 스토리 수업에는 '영웅의 여정'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 공통점들을 정리해서 만든 이 템플릿은 투자자가 영화의 성공을 파악하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 요구하는 시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스토리 이론은 성공한 이야기들만을 모아 분석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흥미롭고 유용할 수 있지만, 단순히 이 공식을 따른다고 해서 모든 이야기가 성공할 가능성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이론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성공했다면 이제까지 할리우드에서는 실패한 영화가 나와선 안되었습니다.
왜 이 이론이 먹히지 않는지는 다른 예시를 통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음식의 요리법을 분석해 본다고 해봅시다. 성공한 맛집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방식을 정리하면 아마도 성심성의껏 재료를 준비하고, 씻고, 다듬은 후 정해진 요리법에 따라 재료를 조리한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요리법을 따르기만 한다면 누구나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사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스토리를 계속 작업하던 사람 입장에선 스토리 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게를 차리기 위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들을 이론으로 알 수 있지만 이것은 '성공'으로 이끌어주지 않습니다. 맛집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각자의 특별한 비법이 있기 때문이고 스토리도 마찬가지죠.
저도 스토리 수업을 하게 되면 언제나 '영웅의 여정'을 설명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가끔 이 이론을 듣고 좋은 스토리를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버립니다. 현실적으로는 가스레인지와 프라이팬을 쓰는 법을 배웠을 뿐인데 말입니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들도 가스레인지와 프라이팬을 씁니다. 아쉽게도 결과물이 조금 안 좋아서 그렇죠.
'영웅의 여정'의 한계점은 또 있습니다. 이 이론은 스토리가 변화하는 17가지의 작은 기점들을 구조화해서 스토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같은 영화를 가지고 각 기점들이 어디냐고 정리해 보라고 하면 다들 다른 답을 가지고 옵니다. 주인공이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에서 '영웅의 여정'의 구조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수준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단 뜻입니다.
스토리 이론은 종종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의 공장화를 목표로 연구되었습니다. 이런 이론들은 스토리 작성 시 가이드라인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과도한 의존은 창의성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다른 예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디자인에선 '황금 비율'이란 게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 가장 예뻐 보이는 비율이죠. 이것은 예뻐 보였던 수많은 디자인들을 모아서 발견된 비율입니다. 이 황금 비율이 유명하지 않았을 땐 디자이너가 자신 눈에 예뻐 보이는 디자인을 계속 연구했을 테고 그게 황금 비율에 가까운 디자이너가 더 좋은 작품들을 만들었을 겁니다.
이제는 '황금 비율'이란 잣대가 생겼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눈보다 이 비율을 믿게 되고 디자인을 의뢰한 사람도 이 비율에 맞춰달라고 요구하겠죠.
그러다가 이 비율이 아름답다고 생각되지 않는 순간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애초부터 아름다움을 고민하고 연구해 왔던 디자이너라면 곧바로 새로운 비율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고민 없이 그 비율만 맞추던 디자이너는 이제 '예쁜 것'이 뭔지 몰라 혼란스러울 수 있죠.
비율이나 이론을 정립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여기에 집중하게 되면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스토리 작성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성공 공식을 답습하는 것은 잠시 동안은 유효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새로운 내용을 창조하지 않으면 결국 독자들의 흥미를 잃게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겠죠.
스토리 이론은 우리에게 유용한 참고자료이자 지침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도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스토리를 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을 넘어서는 창의적 사고와 독자와의 깊은 공감입니다. 스토리 작성은 단순한 수식 적용이 아닌, 지속적인 창조의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