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설득력은 디테일에서
스토리텔링에서 '개연성'은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하고 믿음을 갖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야기의 전개와 사건들이 논리적이고 자연스럽게 이어져 독자가 그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요소이니까요. 독자가 이야기 속 세계에 몰입하려면, 그 세계가 현실의 법칙을 따르거나, 최소한 이야기 내에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까요? 하지만 이 '개연성'이 부족해서 실패하는 이야기가 이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대부분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강제로 몰고 가다가 개연성이 깨지는 경우가 많죠. 현실 기반의 이야기인 경우 어느 정도 '개연성'이 상식선에서 제시될 수 있으나 판타지나 히어로물처럼 상상에 기반한 세계에서의 개연성은 더더욱 문제가 많습니다.
스토리텔링도 마찬가지지만 개연성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향성은 존재하죠. 일단 가면 안 되는 방향부터 이야기해 보죠.
판타지 소설에서 마법의 규칙이 자주 바뀌거나, 앞에서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을 그저 '주인공'이란 이유만으로 가능하게 되는 이야기는 '개연성'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SF 영화에서 과학적 설정이 일관되지 않을 때에도 독자는 그 세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캐릭터의 행동이 일관되지 않거나 동기가 부족할 때, 이야기가 전개되며 쌓아 올린 캐릭터의 성격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도 이야기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집니다. 이러한 경우 독자는 이야기가 허구임을 상기하게 되고 몰입에 방해를 받죠. 사랑에 빠진 캐릭터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상대방을 배신하고는 이 행동이 설명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들의 여정에 관심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재밌는 점은 위의 문제들이 스토리 진행의 디테일에 따라 '개연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판타지 소설에서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을 주인공이 누군가의 핏줄이기 때문에, 또는 거쳐온 여정 중에 실마리가 존재해서 가능하면 그 이야기는 개연성이 존재합니다. SF 영화에서 과학적 설정이 일관되지 않는 이유가 그 세계를 이루는 차원이 바뀌었기 때문이란 걸 스토리를 풀며 설명할 수 있으면 개연성이 생기죠.
캐릭터의 행동이 일관되지 않은 이야기에도 디테일이 살아있다면 사람들은 왜 저렇게 캐릭터가 변했는지 궁금해할 겁니다. 디테일을 잘 쌓아 올린 스토리라면 캐릭터가 성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은 무슨 반전이 있을지, 어떤 속사정이 있을지 궁금해하겠죠.
결론적으로 개연성은 '디테일'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원피스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한 섬의 소년이 해적왕이 되겠다고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는데 결국 나중엔 진짜 해적왕이 됩니다. (될 것 같습니다?) 디테일을 때고 이렇게 단순한 요약으로 보면 별로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 같죠. 하지만 원피스의 내용을 한 권 한 권 읽다 보면 캐릭터에게 서사가 부여되고 이야기에 개연성이 붙습니다. 지금은 원피스 세계관의 다른 해적들도 루피가 해적왕이 되겠다는 말에 비웃을 수가 없는 상태기도 하고요.
세상을 겁먹게 하는 한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여러 종족의 판타지 생명체들이 화산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는... 이렇게만 써놓으면 개연성이 없어 보이죠...?
그러한 면에서 공모전이나 기타 시나리오 기획서를 봤을 때 '시놉시스'로 스토리를 평가하려는 방식에 회의감이 듭니다. 아무리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라도 디테일이 뛰어나면 사람들이 그 스토리에 빠져들 것이고, 아무리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라도 디테일이 별로면 사랑받지 못합니다.
개연성은 스토리텔링에서 독자가 이야기 속 세계에 몰입하고, 그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개연성은 일관된 세계관 설정, 캐릭터의 동기 부여, 현실성, 논리적 사건 전개, 독자의 경험과의 연결이라는 '디테일'을 통해 강화할 수 있죠.
이 '디테일'이란 게 구체적인 예시가 있어야 설명하기 쉬워서 뭔가 글로 올리기 애매하네요. 스토리 수업이었다면 학생이 작업해 온 스토리를 토대로 어떻게 디테일을 올릴 수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데... 방법을 좀 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