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았다면 중학생 아들을 깨우느라 목소리가 커졌을 텐데 오늘 아침은 달랐다. 오전 9시부터 오전 11시까지 2시간 휴가를 내고, 나는 여유로웠다. 아들이 좋아하는 동그랑땡으로 아침을 준비해 놓고, ‘일어나라’ 재촉하는 대신 ‘동그랑땡 해 놓았는데 아침 먹을래?’라며 상냥하게 물었다. 매일 침대에서 ‘5분만 더’를 외치며 나랑 실랑이했던 아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들은 평소보다 2배속 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평소엔 ‘일어나라’ 소리치면서 출근 준비를 하거나 식탁을 치웠는데 오늘은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느긋하게 운전하여 아이들을 학교 앞에 내려주었다. 오늘 확실히 깨달았다. 친절은 시간적 여유에서 나온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집으로 와서 청소를 시작했다.청소기 흡입력이 예전만 못한 것을 알았지만 서비스센터에 전화할 그 짧은 시간을 그동안 내지 못했다. 이것저것 바쁜 일들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뤘는데 드디어 오늘 전화를 걸어 다음 주 화요일로 AS 방문 일자를 잡았다. 공기청정기와 스타일러도 점검받고 싶었기에 상담사와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역시나 상담사 전화 연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런 기다림이 나에게는 아주 길게 느껴지기에 미뤄왔던 것 같다. 오전 2시간의 휴가 덕분에 나는 다음 주 화요일이 되면 흡입력이 짱짱해진 청소기를 만나게 된다.
전날 올린 브런치 글에 댓글이 많이 달렸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답글을 남겼다. 내 글을 읽어주고 댓글로 생각을 나눠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첫 글 발행 후 3개월쯤 지나 구독자가 100명을 넘었다. 태어나 100일, 사귄 지 100일 등 숫자 100은 어떤 지점을 지나왔다는 의미가 있다. 구독자 100명 또한 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 본다. 어제보다 독자에게 더 감흥을 주는 글을 쓰고 브런치에 정기적으로 글을 발행하는 루틴을 만들고 싶다.
오전 11시에 맞춰 출근하는 길에 주유소에 들렀다. 어제 출근길에 ‘주유하세요’라는 경고등이 떴다. 어제 퇴근길에, 주유소에 갔다면 좋았으련만 머리가 무거워 집으로 바로 직행했었다. 오늘의 오전 휴가 2시간 덕분에 나는 여유 있게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을 수 있었다. 차에 기름이 가득 차니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졌다.
“기름이 떨어지면 불안하지 않아?”
남편의 완곡한 표현이지만 나에게 한방 먹이는 말임을 안다.
“경고가 떠도 30km는 더 갈 수 있어.”
나는 태연하게 대답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쯤에 기름이 바닥 나서 결국 차가 멈춰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퇴근길에 미리 주문한 치킨을 가지러 가려고 잠시 시동을 껐는데 그때 방전이 되어버렸다. 운전 경력 10년 동안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동안 남편의 염려와 걱정을 가볍게 여긴 여파가 너무 셌다. 5일 동안 경고창을 무시한 결과였다. 기름이 없어서 차가 멈췄다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화로 말하자니 어디선가 ‘꼴좋다’라는 말 한마디가 윙윙거리는 것 같았다. 보험사에 전화하여 긴급출동을 불렀다. 20분 정도 후에 조그만 기름통을 들고 출장 기사분이 오셨고 2리터 정도의 기름을 넣어주셨다. 아파트단지에서 벌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바로 주유소 가서 기름 넣으셔야 합니다. 이 정도 기름이면 근처 주유소에 갈 수 있어요”
차 안에서는 후라이드 치킨 냄새가 진동했다. 집이 지척인데도 어쩔 수 없이 근처 주유소로 핸들을 돌렸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오전 2시간 휴가를 알차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역시 사람은 쉬어야 재충전이 된다. 차창 밖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올 한해도 이렇게 후딱 지나갈 것만 같다. 달력을 보니 올해 연말까지 100일이 남았다. '100'이라는 숫자는 100점을 연상시켰고, 보름달처럼 꽉 차 있는 느낌이다. 100일을 잘 보내야 올 한해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월부터 9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결과물도 얻었다. 공저 책을 출판하고 북콘서트도 세 차례나 개최하여 지인들의 축하도 많이 받았다. 6월 중순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 매주 한 편씩 글을 발행하고 있다. 누군가가 글을 읽고 공감하여 댓글을 남기는데 그 댓글로 내가 더 응원받는다. 그동안 책을 사서 읽기만 하는 소비자였는데 이제 나도 글을 쓰는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 설렘이 되었다.
올해 연말 ‘어떤 상태라면 기분이 좋을까?’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집중해야 할 사항이 떠올랐다. 아래 4가지를 100일간 꾸준하게 실천한다면 나는 올해 마지막 날, ’한해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집을 청소하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미련 없이 버리거나 기부한다. 버려야 소중한 것이 보인다.
둘째, 주 1회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매일 30분씩 글쓰기 습관을 들인다. 글쓰기는 제2의 인생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셋째, 하루에 7천 보 이상을 걷는다. 산책하면 생각의 전환이 가능하다.
넷째, 자녀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좋은 질문을 한다. 내 생각을 주입하거나 설득하기보다는 자녀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넛지를 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