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시절에 누구에게서 일을 배웠는지가 그 사람의 사회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27년 전 신입사원일 때 당시 팀장님의 업무처리 스타일에 자주 감탄했었다. 팀장님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책이나 신문에서 리더십, 노력, 근성, 창의성, 로열티 등의 내용과 사례를 스크랩하여 매주 월요일 아침, 팀원들을 대상으로 1시간 이상 준비한 인사이트로 정신 무장(?) 시켰다. 팀원 중 일부는 ‘회의 시간이 길다, 정신교육이다’라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나는 팀장님이 들려주는 내용이 유익하다고 생각했었다. 팀장님은 문제 해결력이 뛰어났고, 노하우도 아낌없이 공유하셨다. 또한 복기와 회고를 통해 본인이 놓친 부분을 빠르게 파악하고 날로 새로워(日新 又日新)지려고 노력하셨다. 그 팀장님과 3년 반을 함께 일했다.
물론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팀장님을 통해서 ‘일이란 무엇인가?’,‘어떤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잘 배웠지만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동료들을 보면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왜~저러지?’라며 안 좋게 평가했다. 불만을 자주 토로하는 부정적인 사람과 거리를 두려는 태도도 확연했다. 나는 또래보다 일을 잘하거나 일에 대한 태도가 좋은 선배들과 자주 어울려 지냈다.
내가 팀장이 되고 난 후, 일에 대한 태도가 부족하거나 보고를 제때 하지 않는 팀원을 보면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면담하고 동기부여 시키고, 업무 지시를 더 명확하게 하고, 기한을 정해 제때 업무 처리하도록 독려했다. 태도가 개선되거나 성장하는 직원들을 보면 나 스스로 뿌듯함도 느꼈다.
면담과 코칭을 해도 변화가 더딘 팀원들이 있다.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개선되지 않으면 ‘조직장의 말을 가볍게 여기나?’라며 화도 났었다. 일의 퀄리티는 좋은데 마감 기한을 못 맞추는 사람도 있다. ‘마감 기한을 지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라며 속을 끓였다. 물어봐야만 대답하는 팀원을 보면 ‘내가 언제까지 계속 물어봐야 하나?’ 싶어 마음이 지치기도 한다. 메일 내용과 작성법에 대해 조언해 주면, 내가 언급한 말만 딱 반영하는 사람도 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다시 한번 더 검토하고 메일을 발송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팀원을 보면 답답하다. 수동적인 팀원의 사례는 이거 말고도 수없이 많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그런 팀원들이 열의가 부족한 거라고 단언했지만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팀원들이 낸 결과물에만 초점을 맞췄다.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90점 이상의 개선을 기대했기에 실망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과정을 좀 더 바라봐 주고, 결과가 내 기대 수준의 80% 정도만 되어도 칭찬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자신감이 생긴 건지, 칭찬받은 직원 중 일부는 예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과정’에서 잘한 부분을 찾아내어 세련되게 칭찬하고 격려했더니 팀원들은 인정받았다는 기쁨을 느끼며 열정을 드러냈다. 선순환 사이클의 버튼이 켜진 것이다.
기대가 낮으면 오히려 만족하기 쉽다.
친구가 ‘그 영화 너무 재밌어. 내 인생 영화였어’라고 추천하길래 영화관 가서 봤는데, ‘뭐가 그렇게 좋았다는 거지?’라며 실망한 기억이 있다. 그 뒤로 나는 누군가에게 말할 때 과한 기대감을 담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고 들어간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접했을 때 우리의 만족도는 수직으로 상승한다.
팀원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같은 직장이 아니었다면 평생 얼굴 한번 못 봤을 사람들이다. 한 시점에 같은 공간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만나 일을 함께하고 있다는 건 엄청난 확률이다. 감사한 마음을 바탕에 깔고 팀원들의 업무 성과를 봐주면 ‘결과’가 아닌 ‘과정’에도 눈길이 간다. 다만 나는 결과를 매우 중시하는 사람임을 솔직히 밝힌다. 결과에만 치중하면서 과정을 놓치는 우를 범할 것 같아서 어느 시점부터는 과정도 자주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장단점에 대해서 안다. 지나치게 드러나는 장점은 다른 측면에서 단점으로 보일 수 있다. ‘자신감’이 과하면 ‘자만’이 되고, ‘신중함’이 과하면 ‘우유부단’이 되며, ‘결단력’이 과하면 ‘독단’이 될 수 있다. ‘긍정’이 과하면 ‘회피’가 되고 ‘정직’이 과하면 ‘무례’가 되며, ‘독립심’이 과하면 ‘고립’이 된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는 기대감을 80점으로 맞춰라. 80점만 달성해도 감사함을 표하면 대체로 더 열심히 일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라. 그런 에너지 파장은 신기하게도 마음과 마음으로 기가 막히게 전달이 된다. 요즘 들어 A 부장의 업무 태도가 10% 부족함을 느낀다. 기한 내 보고 타이밍도 못 잡는 데다가 일에 대한 몰입도 떨어져 보인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예뻐 보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눈에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그를 바로 호출하지 않는다. 화가 나서 잔소리할 것 같은 생각이 스치면 그때는 대화할 타이밍이 아니다. 부장에게 ‘무엇이 부족하다’라는 화법보다는 ‘부장 같은 사람도 없다’라는 생각을 먼저 장착하는 편이다. 80% 룰을 빨리 가져오는 것이다.
‘내가 팀을 이끌어가면서 가장 의지하는 사람은 부장님이다. 부장님의 경험과 조언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최근에 보고기한을 종종 넘기던데, 무슨 일이 있느냐? 내가 도와줘야 할 부분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선회하여 대화를 이끈다. 때론 내가 알지 못했던 내용을 듣게도 된다. 그럴 때면 섣부르게 말하지 않고 80% 룰로 대화를 이끌어 간 선택이 다행스러워 가슴을 쓸어내렸다.
팀원이 내 기대치의 80% 이상을 했다면 그의 수고를 인정하는 말부터 시작하라. 내 기대치를 100% 채우지 못했다고 아쉬워 마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내가 시간을 내고 에너지를 쏟아 코칭하고 조언해 주면 팀원이 실수를 덜 하고 개선이 빨리 될 거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다섯 번을 넘게 말해도 실수를 반복할 때는 팀원의 개선 노력이 부족하다고 간주했고, 팀장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 괘씸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엔 나 또한 개선이 빨리 안 되는 영역이 있음을 깨우쳤다. 팀원만 그런 게 아니다. ‘왜 또 못하는 거야?’라는 질책의 말보다 ‘다른 영역은 잘하는데, 이 영역 개선이 더딘 이유가 있나요? 내가 뭘 도와줄까요?’ 라고 물어봐 주는 상사가 있다면 나는 그런 상사와 일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해주는, 나 또한 팀원들에게 그런 상사가 되고 싶다.
Key Message
1. 함께 일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라.
그런 에너지 파장은 신기하게도 마음과 마음으로 기가 막히게 전달이 된다.
2. 팀원이 내 기대치의 80% 이상을 했다면 그의 수고를 인정하는 말부터 시작하라.
3. 상사에게도 80% 룰을 적용하라. 내 기대치의 80점만 되어도 훌륭한 상사로 인정해라.
완벽한 상사는 없다. 다른 상사와 비교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