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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망고 Oct 09. 2023

시어머니와 약밥

미술 하는 초등학생 딸의 예중 입시가 2일 남았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계신 시어머니는 고생하는 손녀와 그 친구들을 위해

아침부터 약밥을 만들었다며 학원 몇 시에 가냐고 문자를 보내셨다.     


아침 8시에 이미 데려다주고 온 터라,

보내주신 약밥 사진을 보곤 잠시 고민하다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OO 벌써 학원 데려다주고, 전 집에 왔어요.”     


“지난번 다른 엄마가 송편을 나눠줬다길래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아서 약밥을 만들었거든. 아이들 나눠주면 안 될까?”      



시어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시다.

요리도 꽤 잘하셔서 신혼 초기엔 시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음식을 먹고 싶어

시댁에 간 적이 종종 있을 정도이다.

이 분을 만난 것은 인생에 큰 행운이라 생각하며, 항상 감사히 여기고 있다.      


그런 시어머니께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온종일 그림 그리느라 고생하는 손녀와 친구들을 생각하며

찹쌀을 불리고 밤, 대추, 잣 등 견과류를 넣어 예쁘게 자르고 만드신 약밥을 보며 잠시 고민했지만, 

제안을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나눠줄 수야 있겠지만, 아이들은 먹지 않을 테고

그럼 정성스레 만든 음식도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우리 딸도 약밥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눠줬다고 거짓말하고 그냥 우리 집 냉장고에 넣어 놓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나중에 들통나면 서로 난처해질 입장이라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 지난번 다른 엄마가 나눠 준 송편도 애들 잘 안 먹었어요.

저도 저번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거트 아이스크림 배달시켜 준 적도 있어서 걱정 안 하셔도 돼요.”라고     


티 내진 않으시지만, 못내 서운하신 마음이 전화기 너머로 전달되어 아침부터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바꾸진 않았다.

대신, 딸이 집에 돌아오면 저녁에 출출할 때 먹이겠다고 말씀드렸다.    






얼마 전, 후배들이 회의하러 간다기에

마침 그날 산 스타벅스에서 파는 사탕 통(씨프렌즈 캔디)을 주곤 먹으면서 하라고 했다.

한, 두 개 집고선 다시 나한테 주길래



“아니, 이거 너네 먹으면서 하라고.”라며

다시 돌려주었다.      


새 제품은 아니었고, 방금 깐 제품인데 내가 2개 정도 집어먹고 준거라

“먹던 거라 좀 그런가?”라고 물었더니

“아니요. 괜찮습니다.”라며 사탕 통을 회의실로 들고 갔다.     


회의를 끝내고 나선 다시 그 통을 돌려주길래

“아냐, 이거 그냥 너희 다 먹으라고 준 거야.” 이야기했고,

“그럼 잘 먹겠습니다.”라며 다시 들고 갔다.      


그 조그마한 사탕 통이 뭐길래 그냥 받으면 되지

‘왜 저럴까?’ 싶었는데


오늘 시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한 후

방금 그 사건이 머릿속을 스치며

‘아! 이 친구는 사탕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난 단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스타벅스 사탕은 좋아한다.


얇아서 먹기 편하고, 다양한 바닷속 생물 모양의 컬러풀한 사탕은 보는 재미가 있으며 귀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고 사탕을 받아 든 후배는 ‘뭘 이런 걸 주나?’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약밥처럼, 스타벅스 사탕 역시 내가 아끼는 것을 나눠준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상대방은 취향이 아닐 수도, 어쩜 귀찮은 음식물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SNS에서

성숙한 사람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과하게 베풀지 않으며,

되돌려 받지 않아도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베푼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상대에게 좋은 것을 계속 베풀다 보면 나중에 보상심리가 생겨 왠지 내가 희생한 것만 같고,

그 희생을 보상받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성숙한 사람이 무언가를 베푸는 것은 그것이 상대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을 때

행하는 것으로, 베풂에도 선을 지킬 줄 아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나의 상황에 적용해 보았을 때,

4,500원짜리 스타벅스 사탕은 과하게 베푼 것도 아니고, 되돌려 받으려는 마음도 없었으며

설사 후배가 취향에 맞지 않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한들 서운한 마음은 들면 안 된다. 그럼 되었다.


난 회의하러 가는, 열심히 일하는 후배들이 귀여운 마음에 내가 애정하는 사탕을 나눠준 것뿐이고, 그들도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진 않았을 테니.

     

그래도 다음엔 취향을 고려해야겠다. 상대방이 즐겨하지도 않는 사탕을 순간적인 내 마음이 동한다 하여 무작정 주는 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처치곤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그들의 취향은 잘 모른다. 어쩜 맛있게 먹었을 수도)




이 글을 쓰는 동안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약밥을 포장해 오시곤 딸에게 주라고 가져다주셨다.


아무래도 이 정성은 도저히 내 선에서 자를 수가 없어 미술학원 선생님들과 함께 먹으면 되니, 학원에 전달해 드리겠다고 했다.      


시험에 합격하라고 찹쌀떡 대신, 찹쌀을 넣은 약밥을 만들어주셨다는 할머니의 위대한 마음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먹는 아이들도 먹지 않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그 마음이 잘 전달되어

다들 고생한 만큼 좋은 성과가 있길 바라며 

곱게 포장한 약밥을 들고 미술학원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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