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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크톤 Jul 01. 2024

유유상종

2024년 6월 11일



 이번 주 수요일은 동기 선생님과 약속이 있다.


우리는 일찍 조퇴를 내고 만나 낮술을 하기로 했다. 5년 가까이 옆 학교에서 근무를 하며 함께 한 선생님은 사회에서 만난 사람 같지 않게 나를 잘 이해하고 있는 믿음직스러운 친구이다.


 첫 만남부터 나는 선생님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간호사를 그만두고 보건교사가 된 과정, 애주가인 것(대부분의 간호사가 그렇지만..), 독서와 사색의 취미, 인권 문제에 민감한 감수성, 문제 해결적 사고방식.. 그날 앞으로도 우리가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체감했던 것 같다.

 선생님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는지 고작 한 번 만난 내게 자신이 하는 모임에 동참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여성 인권을 비롯한 사회 문제를 공부하고 각종 관련 활동을 하는 모임이었다. 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학교라는 큰 공통사 외에도 다양한 시간들을 함께 보내며 점차 가까워져왔다.


 선생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 나보다 책을 더 많이 읽는 유일한 사람이다. 우리의 근황 토크는 최근 읽은 책부터 시작된다. 각종 소설과 인문학, 경제와 재테크 관련 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에 대해 서로 평을 들려주고 추천하는 시간이 매번 즐겁다. 우리는 약자와 소수자들의 이슈에서도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인권 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개인적 한계 등을 가감 없이 나누며 서로에게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한동안은 동물권에 꽂혀 함께 책도 보고 직접 비거니즘을 실천해 보기도 했다.

 한편 선생님은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선생님은 나보다 사회적 민감도가 훨씬 낮은 것 같다. 인간관계에 크게 에너지를 쏟지 않는 기질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의 주관이나 신념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는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게 마치 S극을 마주친 N극처럼 끌려간다. 내 애인도, 내가 애정하는 유튜버마저도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높은 사회적 민감성 때문에 정이 많고 가끔은 타인을 필요 이상으로 신경쓰는 나는, 의식할 겨를 없이 이런 사람들에게 감기곤 한다.

 또 통제 성향이 강한 나와 달리(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선생님은 아무도 통제하지 않고 자신 역시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다. 물론 선생님도 연애 대상에게는 다를 수 있겠지. 단지 내가 접한 범위에서는 통제적인 면모가 전혀 없어 그 점이 인상 깊었다.(유사과학이라지만 mbti도 p이심..) 우리의 직업 특성과는 그다지 조화롭지 않아 보이는 선생님만의 자유로움을 보고 있자면 속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이 든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언제든 날아갈 수 있는 '새' 같은 사람. 나에게 선생님은 그런 이미지이다.


 인간이 인간을 편하게 느끼려면 공통점이 많아야 한다. 반면 인간이 인간을 매력적으로 느끼려면 차이점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관계가 딥해지기 위해서는 대략 7할의 유사함과 3할의 색다름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는 대조되는 성향이 몇 가지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꽤나 비슷하다. 매일 혹은 매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공백이 있기 마련인데, 오랜만에 연락을 하고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신기하게도 그간 각자의 자리에서 매우 유사한 생각과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몇 번이나 신기해하며 감탄했던 경험이 있다. 선생님과 나의 타고난 기질과 관계없이 우리의 현재 삶의 형태는 비슷하다. 이른 퇴근과 많은 여가시간, 다양한 취미와 자기 계발, 스트레스가 덜한 업무 환경, 넉넉하진 않지만 먹고살기엔 나쁘지 않은 월급...

 어쩌면 인간관계는 타고난 것들보다 환경에서 오는 공감대가 더욱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닿는다. "유유상종"은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귄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이 유유상종이란 단순히 비슷한 인간들끼리 친해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같은 무리"에 속해있는, 즉 환경이 비슷한 인간들은 결국엔 가까워지고 친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진정한 유유상종의 의미가 아닐까.


 아무리 성격이 비슷한 친구도, 오래되고 가까웠던 관계도 환경이 달라지면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평생 볼일 없을 것 같은 사람들과도 같은 환경에서 지내다 보면 어느새 비슷하게 닮아간다. 그렇게 끼리끼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병원에서 그만두기로 결심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극혐하던 선배들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었다. 이 또한 몇 년이란 시간 동안 같은 환경에서 복작거리며 그들의 삶의 태도가 내게도 스며들었던 거겠지.

 유유상종의 좋은 케이스가 되고 싶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좋은 환경으로 가는 것이다. 현재 있는 환경을 뒤집어엎고 바꿔버릴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개인의 노력으로는 쉽지 않을 테니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내가 소속되어 있는 무리를 살피며 좋은 끼리끼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거침없이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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