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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크톤 Jul 01. 2024

베르나르 뷔페전

2024년 6월 23일








 베르나르 뷔페전을 보고 왔다. 정말 강렬한 전시였다. 몇몇 그림 앞에서는 다리까지 전율이 돋고 한동안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았지만 그 중 단연 최고로 인상 깊은 전시였다. 뷔페의 마구잡이로 그려진 듯 나름의 규칙을 가진 선들은 그의 신경질적이고도 예민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무심하게 던져 그린 듯한 요소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상하기에 완벽한 구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든 그림들의 선이, 요소들이 불안하고도 날카로운 긴장감이 맴돌았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우중충한 색으로 칠해져 있었지만 화풍과 어우러져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뷔페가 그려낸 다양한 인간들은 대부분 공허하거나 슬프거나 괴로워보였다. 기형적으로 긴 팔과 다리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특히 마음에 남은 작품은 서커스단의 두 남자가 공중그네 묘기를 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보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그 그림의 모든 것이 불안했다. 한 남자가 다른 한 남자에게 가기 위해 그네에서 떨어지는 찰나의 긴장감, 장면과 어울리지 않는 칙칙한 색감, 두 남자의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무기력한 표정. 또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한 여성의 얼굴이었는데 보자마자 미친 여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 주변에 립스틱이 잔뜩 번진 채 충혈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정신나간 표정이 강렬한 색채와 함께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 옆에 함께 있던 비슷한 작품의 이름이 광녀 였던 것으로 보아 내가 느낀 것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풍경 그림에는 단 한 명의 인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나는 그냥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표현하는 풍경들을 마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어떤 장소로써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간이 들어가는 순간 풍경은 배경이 되고 현실과 맞닿는 생동감이 생겨버린다. 인간을 그릴 때와 풍경을 그릴 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달랐고 그것들이 서로 섞이지 않기를 바랐을 것 같다는 짐작이다. 그가 그린 건물들은 전부 치밀하지 않은 듯 매우 치밀하게 표현되어 있었으며 건물 꼭대기에 얇은 수직선들을 여러 개 그려넣음으로써 상승감과 비현실감을 느끼게 했다. 또 내가 알고 있던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베르동 협곡이 얼마나 어둡고 강렬하게 그려져있는지를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똑같은 풍경을 보고도 이 작가는 이렇게 느끼고 표현했구나 하며 몇 번이나 감탄하며 들여다보았다.


  후에 사랑을 만나고 화풍이 변화한 것 또한 정말 인상 깊었다. 특유의 비관적인 작품들 속에서도 아내를 그린 그림에서만큼은 깊은 애정과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풍경 작품마저도 아내와 사랑을 시작한 곳, 여행을 다닌 장소는 보다 밝고 화사한 색채를 사용하여 사랑이 그에게 주는 의미를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 둘의 보금자리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듯한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오는 길에 엽서도 샀다. 뷔페의 날카롭고 우울했던 기존 화풍에 사랑으로 인한 미묘한 따뜻함이 가미되니 더욱 더 매력적인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뷔페는 파킨슨으로 손이 떨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작품들을 완성한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뷔페의 생이 내게는 마치 기승전결이 완벽한 영화 한 편처럼 느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라인이 탄탄하며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개성이 있는 그런 웰메이드 영화. 동판화, 석판화, 유화 등 다양한 작업을 했으나 그 종류에 상관없이 그의 작품들은 기가 막히게 일관적이었다. 그는 무식할 정도로 올곧게 전 생애에 걸쳐 자기 자신을 표현했다. 세상이 주는 풍파에 끝도 없이 흔들리고 어떨 때는 자기 확신마저 휘청거리는 나는 그의 그런 자세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시건방진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면 분명 뷔페와 비슷한 분위기의 작업을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여태까지 봐왔던 모든 작가들을 통틀어 나와 제일 비슷한 사람이라 느꼈다. 나는 작품을 보는 내내 동질감을 통해 깊은 위로를 받았다. 지독히 염세적이었으나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변화하는 과정까지도. 동시에 그가 사는 동안 얼마나 외롭고 불행했을지 여실히 공감할 수 있어서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가장 컸던 마음은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보란듯이 자신의 삶으로 직접 증명하고 떠난 그가 부러웠다. 타고난 예술적 재능, 자신만의 시각을 작품에 녹여낸 자신감, 세상의 변화와 상관없이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낸 묵묵함, 생의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마감한 강단.

 참으로 오랜만에 많은 울림을 주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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