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에 조식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전일 더위에 혼이 났던 나는 조식을 먹지 않고 일찍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6시쯤 나섰던 것 같다.
어둠이 사라지기 시작한 길을 천천히 걸었다.
떠나기 전 돌아본 보르다
오늘 걷는 루트는 순례길에서, 아니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내가 순례길을 다시 간다면 이 길을 한 번 더 걷고 싶어서일 것이다.
나는 산맥 중간에서 묵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출발했기 때문에, 특별히 여명이 밝아오는 피레네를 볼 수 있었다. 하루 만에 이곳을 넘는 사람들은 만날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한걸음 한 걸음이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길을 온전히 혼자 즐길 수 있다니. 행복감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저 멀리 동상 같은 것이 서 있어 다가가보았다.
가까이 가보니 성모마리아 상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똑같은 길을 걸었어도 이 동상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천주교 신자가 아님에도 성스러움에 마음이 경건해졌다.
동상 옆으로 펼쳐져 있는 풍경
풍경을 즐기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긴 탓인지 한두 시간 뒤 사람들에게 따라잡혔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은 다리가 길쭉해서 보폭도 큰가 보다.(부럽)
Laura가 나를 불러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는 내 스틱 길이를 조정해 주고 물을 많이 마시라고 조언도 해주었다.
저~멀리 내 앞에 가고 있는 Laura
자유로이 풀을 뜯는 말들
Laura의 뒤를 따라 걷다가 푸드트럭에 도착했다. 오리손부터 론세스바예스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음식점도, 바도, 화장실도.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곤 한다.
푸드트럭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Laura
직접 만드신 치즈라고 했다.
빵과 치즈를 사서 먹었다. Laura는 바나나와 치즈를 사고 커피를 마셨다. 여기서 한 독일 할아버지도 만났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이름을 묻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아쉽다.
할아버지는 표정이 없고 인상이 차가워 처음엔 조금 어렵게 느껴졌으나, 함께 걷고 대화를 나눠보니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었다. 자신은 현재 일흔이며 먼 옛날 이곳을 온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는데, 그 때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었는지 느꼈다. 그래서 죽기 전 이곳을 한 번 더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의 페이스대로 묵묵히 길을 걷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떤 순례자의 묘지
Laura가 나바ㄹㄹㄹㄹㄹ라~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탈리안은 이탈리안이구나..
계속해서 걷다 보니 앉을만한 구조물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삼삼오오 모여 뷰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쉬던 중 피터 아저씨 일행을 다시 만났다. 피터 아저씨의 스틱과 내 스틱은 똑같은 제품이었는데, 아침 일찍 혼자 출발하며 뭔가 이상함을 느꼈던 나는 아저씨에게 우리의 스틱이 서로 바뀐 것 같다고 했다. 아저씨가 오 맞아! 하며 얼른 바꿔주었다. 어젯밤에는 잘 잤냐고 물어보셔서 그랬다고 대답하며, 혹시 나 코 골았니..?라고 조심스레 물어보자 피터 아저씨는 아니 아니! 너 아주 조용했어 라고 대답해 주었고, 제리 아저씨는 깔깔깔 웃으며 그래 그래~ 너 아주 시끄러웠어~~ 라며 장난을 걸어왔다.
쉬고 있는 순례자들
론세스바예스에 거의 다 와갈 때 보이던 능선도 정말 아름다웠는데, 사진으로는 잘 담기지 않아 아쉽다.
보랏빛이 도는 산이 특이했다.
오늘 묵을 숙소가 보인다.
마지막 30분 정도는 독일 할아버지와 함께 걸었는데 그도 나도 영어는 잘 못하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만큼은 그대로 느껴졌다. 순례길 경험이 있는 아저씨는 내게 길을 안내해 주기도 하고, 바닥이 위험한 길은 조심하라고 경고도 해주었다. 내가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갈 때 밑에서 나를 기다려주기도 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도 내게 체크인을 먼저 하라며 양보해 주었다. 이후에도 몇 번 마주쳤는데 나를 볼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시는 모습에 항상 마음이 따스해졌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 할아버지가 더 이상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본격적으로 걸었던 둘째 날도 끝이 났다. 발에 불이 나는 듯하고 땀도 꽤 흘렸지만 수월하게 숙소에 도착했다.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풍경이 힘듦을 상쇄해 줬다.
보르다에서 주문했던 런치팩을 도착해서야 먹었다. 막 맛있지는 않았지만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숙소는 어마어마하게 큰 도미토리였다. 나는 건강한 젊은이(?)이기 때문에 거의 2층 침대의 위층을 배정받곤 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붙어있는 침대들끼리 안면도 트고 스몰톡도 나누게 되는데, 이날 내 침대 아래에 묵은 놈은 프랑스인 Immanuel이었다. 추후 이야기하겠지만.. 이놈과 불쾌한 일이 있었다. 어쨌든 처음부터 눈빛이 좀 느끼하다고 느꼈다.
열심히 손빨래를 한 후 잠시 쉬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날 적은 메모는 마지막에...
7시에 커뮤니티 저녁식사를 예약해두었기에 맞춰서 내려갔다. 여기에서 또래 나이의 한국인들을 처음 마주쳤다. 나와 동갑내기 부부인 M님과 K님,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E님.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우리 네 명은 끝 테이블에 모여 앉게 되었고, 오순도순 한국어로 편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M님과 K님은 한국 집을 정리하고 나와 세계여행+유튜버를 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E님은 오늘 하루 만에 피레네산맥을 넘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울면서 걸어왔다고 했다. 오늘만 장장 13시간을 걸었고, 도착하자마자 커뮤니티 식사 시간이 다 되어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식당으로 온 터였다. 우리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돼지고기랑 생선 중 생선을 골랐더니 리얼 생선이 나온...(대구 필렛 같은 걸 줄 거라 생각함)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 내에 있는 성당에서 하는 미사를 구경하러 갔다. 천주교는 아니지만 한국의 성당과 뭐가 다른지, 미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다.
(내가 미사 간다고 하자 M님 K님 부부가 "천주교세요?" 하셔서 "불굔데요." "그럼 미사는 왜 가세요...?"했던 게 기억난다 ㅎㅎㅎ 쫌 웃겼음..)
미사를 10분가량 듣고 있자 졸음이 몰려왔다. 스페인어라 전혀 못 알아듣기도 하거니와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날이라 피곤했던 것이다. 성당을 나와 숙소로 들어갔다. 내일은 5시에 일어나서 나가야지 결심을 하며 빠르게 잘 준비를 한 후 침대로 직행했다.
이날은 행복에 대한 생각을 했다.
순례길의 평을 찾아보면 "행복이란 게 별거 아니다"는 것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아주 단순하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행복하고, 날씨가 좋으면 행복하고, 밥이 맛있으면 행복하고,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나면 행복해서 그렇게 느꼈으리라. 행복이란 게 많은 걸 필요로 하는 게 아니구나~ 이런 맥락으로.
하지만 나는 그들과 반대였다. 오히려 내가 일상에서 누리던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실감했다. 순례길에서는 모든 것이 불편했다. 걷는 것은 차라리 괜찮았다. 내게는 걷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이 쉽지 않았다.
짐을 최소화해야 하는 순례길에서는 샴푸 하나로 세수와 샤워를 하는 것도 모자라 빨래까지 해야 한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씻고 빨래하는 과정은 최대한 재빠르게 마쳐야 한다. 공용인 샤워실과 화장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사용감이 생생하다. 10시까지 해가 떠있는 스페인의 밤과 에어컨이 없는 숙소는 순례자들을 더위로 잠 못 이루게 했다. 아무리 더워도 베드버그에 물릴까 미끌거리며 몸에 달라붙는 침낭을 걷어버릴 수도 없었다. 배가 고파도 시에스타에 걸리면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을 수 없었고, 간식 개념으로 파는 음식들로 대충 때워야만 했다. 식당의 일정에 내 일정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국에서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그게 좋은 집이든 아니든 간에.) 향기가 나는 온갖 목욕용품들로 샤워시간을 만끽한 후, 보습제와 오일로 피부 관리를 한다. 모든 옷들은 색깔 별로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울 빨래, 면 빨래 종류까지 구분하여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기만 하면 된다. 사계절 부드러운 모달 이불을 덮고, 더울 땐 에어컨을 추울 땐 보일러를 켠다. 평일 내내 쾌적한 사무실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일하다가, 주말이면 문화생활이든 운동이든 끌리는 것을 선택하고 놀러 나간다. 시간이 몇 시든 어떤 종류의 음식이 먹고 싶든, 나가서도 배달을 시켜서도 먹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상을 함께해 주는 사랑하는 애인마저 곁에 있었다. 바로 이게 나의 사치스러울만치 우아한 일상이었다.
행복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겠거니 하며 이곳에 왔는데, 행복은 내가 뒤로하고 온 곳에서 가만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미 내가 알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마음을 다해 사랑을 하고 불교 교리를 공부하며 행복이라는 건 먼 데 있지 않다는 것을, 평화로운 일상이 주는 소소한 기쁨이야말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가치로운 것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울러 오늘 피레네산맥의 자연 경관이 눈앞에 펼쳐질 때 전율이 돋으며 조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가난하고 꿈도 없던 내가 어느새 이렇게 성장하여 이곳에 서있다는 것이 실감나서였다. 나는 이제 꿈을 꾼다. 그리고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돈도 시간도 투자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위기들은 결국 나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버텨내고 여기까지 도달한 스스로가 진심으로 대견했다.
일상과 한 발짝 떨어져 돌아보니 나는 가진 것이 너무나도 많은 부유한 사람이었다. 돈과 재력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 행복에 한해서는 이미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부자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