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디쯤 계시는지요. 어디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날입니다. 당신이 되고 싶은 나는 이 자리에서 여전히 당신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기를 포기했습니다.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기에 나는 아무것도 아닐뿐더러, 그러한 언어로는 나를 적확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무수한 당신들의 파편들로 구성된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신의 말이 자유롭게 부유하다가 ‘나’라는 덩어리에 붙어 하나가 됩니다. 내가 아니었던 수많은 말들이 뭉쳐져 비로소 ‘나’라는 명명 아래 하나가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진정으로 하나의 독립된 존재라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나의 어떤 부분도 나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면 그것을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는지요.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되고 싶다는 모순되면서도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달성할 수 없는 신기루라 할지라도, 꿈은 꿀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언젠간 저도 조각들로 구성된 덩어리, 집합체가 아닌 단독자로서 단단히 서 있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쯤에서 나의 당신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당신들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도, ‘진정한 나’를 찾거나 만들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히 단언하건대 나의 당신들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우며, 아름다울 것입니다. 어쩌면 나와 하나가 되는 것보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더 아름답겠습니다. 나를 이루는 당신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머지 우리의 하나 됨이 불결하고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째서 각기 아름다운 당신들이 모여 ‘나’를 이루었는데 세련되어지기보다는 더욱 추하고 가짜가 되어 가는지요. 다다익선이 적용되지 않는 문제인가 봅니다.
당신들은 하나의 우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우주에서 유래한 부유물을, 빛을 흡수해 비대해지는 돌덩이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의 우주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인지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한히 확장하고 있는 당신의 우주를 사랑하고 당신의 파편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을 사랑하는 것이 마냥 좋다고는 이야기하지 못하겠습니다. 때로는 당신 때문에, 당신을 오역한 나 때문에 아프기도 합니다. 가끔씩 당신을 질투하기도 하지만 질투보다는 동경이 덜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일방향적인 사랑을 놓지 못하는 까닭은 내가 당신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던 한 괴물을 떠올립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주는 타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스스로를 인간으로 정체화할 수 있는 그 자신이었을까요. 문득 둘 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나진 존재는 자신만의 우주를 가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요구받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절대자도, 운명도, 프랑켄슈타인 박사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나는 그래서 당신들을 모방합니다. 당신의 우주를 본 따 삶과 비슷한 몸짓을 흉내 내어 봅니다.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괜찮을 것도 같습니다.
이 편지도 역시나 자아를 가진 존재로 인정받고 싶고, 스스로 인정하고 싶은 ‘나’의 몸부림이겠지요. 언제쯤 진짜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은 할까요.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면 ‘나’라는 이름조차도 까먹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스스로 뱉어낸 고통을 가득 퍼서 삼켜냅니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어쩌면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부디 내 안에서 평안하기를, 나와 하나가 된 것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 노력의 몫은 저에게 있긴 하지만요.
이제는 당신들 각각의 출처를 기억하지 못할 만큼 한 데 뭉쳐 융합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독자적인 무언가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