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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해저, 생명. 그리고 농업

겸손함을 기반으로 한 이해를 위한 노력

by Agri MSG

넷플릭스에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다큐를 봤다.

허블 망원경에 멈춰있었던 인간의 우주탐사 역사에 대한 내 지식을 업데이트하는 그 시점에,

2021년 봄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을 떠올렸다.


한창 재택근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던 어느 날 점심, 한 개발자가 가볍게 이런 의문을 던졌었다.


“아니, DNA 염기서열 분석 거의 끝난 거 아니었어요? 백신 개발이 그렇게 어렵나.. 이미 만들어 놓은 백신도 여러 종류일 텐데, 코드 여러 가지로 변경해서 실험하면서 조정해 보고 실험해 보면 되는 거 아닌가?”


그저,

"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치 코딩하는 것처럼 짜고 실행해 보고 변경하면서 디버깅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오.." 라고 일갈했던 그때의 미성숙함이 뒤늦게 부끄러워졌다.


그때의 그 개발자에게, 전달했어야 하는 이야기를 늦게나마 적어 본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시대에서, 오히려 인간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인지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인간에게 아직 미지로 남아있는 건 세 가지가 있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19일 오후 07_19_32.png

하나, 생명

둘, 해저

셋, 우주


우주는 너무 멀고 크다.

해저는 너무 깊다.

생명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어렵다.


우주와 해저는 인간개체의 시공간적 한계와 닿아있는 미지의 세계라면,

생명은 “수많은” 상호작용과 가능성에 대한 미지의 세계다.



생명을 이해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늘 존재해 왔다.

2000년대 초,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었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 생명을 알게 되었다. 곧 모든 질병을 정복할 것이다.”

유전자 지도는 완성되었고, 모든 염기서열이 디지털화되었다.

그러나 그 뒤로 20년이 지나도 인간은 여전히 노화를 막지 못했고, 암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고, 게놈 기반 치료는 극히 일부에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염기서열 = 생명

이 아니기 때문이다.


염기서열은 부품이고, 코드는 구조다. 하지만 생명은 ‘작동하는 전체’다.

하나의 유전자가 어떤 단백질을 만들고, 그 단백질이 어떤 경로에서 어떤 효소와 상호작용하고, 그 경로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총체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기술은 아직 없다.



하라리는 《넥서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모로, 하라리의 통찰력은 너무 존경스럽다)

정보가 있다고 해서 연결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생명이란 ‘연결’의 총합이다.

하나의 세포는 단순한 유전자 조합이 아니라 온도, 습도, 신호, 스트레스, 영양, 감염, 면역, 호르몬 등 수백 가지 요소들의 실시간 연결 속에서 반응하고 변화한다.


"이것도 저것도 있을 수 있는 상태. 여러 가지 상태가 존재할 수 있는 불확실성." > 그 알 수 없음에 대해 검토해 볼 수 있는 것은 양자컴퓨팅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 마저도 아직 상용화단계에 미치지 못했으므로, 생명을 완벽히 이해하는게 불가능 할 수밖에 없다.

(양자역학에 대해 내 이해도는 여기까지니, 누군가 우매함을 탓하셔도 달게 받겠다..ㅠㅋ)



그리고 농업은, 그 가능성의 장을 다루는 일이다.


양자역학적인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농업은 생명의 함수를 현실로 수렴시키는 행위다.

작물은(생명은) 언제나 여러 방향으로 자랄 수 있는 중첩 상태에 놓여 있다.

그 상태는 환경, 작업자, 기술의 조합에 따라 하나의 결과로 수렴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고, 다만 관여를 통해 수렴시킬 수 있을 뿐이다.


마치 우주의 입자가 관측되기 전에는 여러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관측자가 그것을 측정하는 순간 하나의 입자로 결정되듯이,

농업도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한 방향을 향해 농부가 관측하고, 돌보고, 결정할 때, 비로소 결과물(수확물) 이 태어나는 행위인 것이다.




DNA시퀀싱이 모든 걸 해결해 줄 키가 될 거라는 오만에서, 양자컴퓨팅으로 가능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겸손으로 생명공학의 접근 방식이 변화했듯이,

농업에서 기술을 이야기할 때에도,

제어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기술이 먼저여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제어의 기술은 “문제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기술”이다.

*이해의 기술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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