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센스의 정규앨범이 발매되었다. 빈지노와 함께 국내힙합 정상에 우뚝 선 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래퍼이기도 하다. 옥중에서 발매한 <에넥도트>,얼룩진 시내를 걷는듯한 <이방인>은 모두 서사적으로도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저금통>은 앞선 두 앨범과는 궤를 달리한다. 앨범을 관통하는 굵직한 스토리라인이 없다. 대신, 신난다.
첫 번째 트랙부터 도끼와 함께한 <No boss>.빈지노와 랩스킬로 자웅을 겨루는 <A YO>. 그리고 우직하고 빽빽한 래핑을 보여주는 <Gas> 모두그렇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 최대한 생각하는 걸 비웠다고 한다. 장고를 거듭하다 보면, 왠지 앨범이 '그래야 할 것 같은' 서사와 사운드를 담아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뭔가 글을 쓰다 보면 그럴듯한 교훈이나 깨달음이 담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넘치는 옷장을 황급히 닫는 듯이 내려버리는결말은 으레 쓸모가 없었다. 오히려 잘 모르겠다거나, 결론이 잘 나질 않는다고 솔직하게 시인하는 편이더 나은 적이 많았다.
인생에 있어 온전한 도착이 있을까. 우리는 시시프스처럼 계속 바위를 굴릴 뿐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이 없다, 결국 이센스의 말처럼 '지금 괜찮아야 한다'. 쾌락이나 본능을 쫓는 건 잘못된 게 아니라, 오히려 자연에 충실한 행동이다.